“엄마, 나 그냥 혼자 갈게.”
수의 말이었다.
학원 실기 수업이 있는 날, 평소 같으면 같이 집을 나섰을 시간. 엄마는 손에 텀블러를 들고 주방에서 준비 중이었는데, 수는 이미 가방을 둘러메고 신발을 신고 있었다.
“같이 가자니까. 엄마도 근처 볼일 있어.”
“괜찮아. 엄마는 쉬어. 나 혼자 잘 가.”
수는 다정한 듯 단호했다.
엄마는 잠시 머뭇거리다 텀블러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말없이 수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거실 창 너머로 수가 걸어가는 모습이 작아지는데,
갑자기 어릴 때 모습이 오버랩됐다.
놀이방 매트 위에서 혼자 퍼즐을 맞추던 수.
“엄마! 이거 해줘!” 하던 아이는
어느새 “엄마, 그냥 가만히 있어 줘.”라고 말할 줄 아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한편, 그 시간 쿤은 집에서 과제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몰래 방 문을 열고 다가가
그가 키보드로 두드리는 문장을 살짝 훔쳐봤다.
“주인공은 한 번도 엄마와 멀어진 적이 없었다. 단지… 엄마가 조용히 사라지는 법을 알았을 뿐이다.”
엄마는 헛기침이라도 할까 하다가 슬그머니 방문을 닫았다. 쿤의 방은 오늘따라 유독 조용했다.
그 애는 아직 “혼자 갈게”라고 말하진 않지만,
자신만의 세계가 분명 있었다.
며칠 전, 쿤은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툭 던지듯 물었다.
“엄마는, 내가 소설가 안 되면 어떡할 거야?”
그 질문엔 사실 ‘엄마는 언제나 내 편이지?’라는 뜻이 숨어 있었다.
“그럼 네가 다른 걸 하더라도 재미있게 살면 되지.” 하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게만 해줘도
잘한 거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날 밤, 수는 연습 영상을 보며 자기가 했던 실습을 분석했고,
쿤은 수업에서 과제로 받은 시를 쓰며 골몰했다.
둘 사이를 오가며 간식도 챙기고,
빨래도 널었다.
누가 보면 그저 평범한 엄마의 하루였지만
그건 마치 배경음악처럼,
필요하지만 보이지 않아야 하는 어떤 존재 같았다.
수가 내일 입을 옷을
미리 꺼내두지 않았다는 걸 알고
그 방에 살짝 다녀왔다.
바닥엔 아직 운동복이 뒹굴고 있었고,
책상 위엔 반쯤 비운 텀블러가 놓여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그걸 치우고 나왔다.
그리고 쿤의 방문 앞에 멈췄다.
열어보니 쿤은 자고 있었고,
책상엔 반쯤 쓴 시 초안이 놓여 있었다.
“엄마는 사라지는 기술을 가진 마법사야.
손에 잡히지 않지만,
늘 곁에 있는 공기처럼.”
엄마는 그 구절을 보고 살짝 눈시울이 젖었다.
쿤도 알고 있었다.
엄마가 늘 뒤에서, 조용히 있다는 걸.
그렇게 오늘도 엄마는 사라지는 기술을 쓰며,
수와 쿤의 하루 속에서 티 나지 않게 존재했다.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빛을 비추는 방식으로.
이것이 소소한 우리의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