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천주교, 불교학교를 거쳐 대학은 다시 기독교학교로 진학했다. 신촌에 있는 여대였다.
사실 남녀공학을 가고 싶었지만 아빠가 여대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해서 오게 된 학교였다. 학교에 대한 애착도 별로 없었다. 이리 봐도 여자, 저리 봐도 여자. 여중, 여고를 나온 나로서는 설레임이라고는 1도 없는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물며 출석체크를 하는 채플시간이 있었다.
중, 고등학교 6년 동안 예배를 드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하나님의 존재는 기억 저너머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 나의 영적인 상태에서 의무적인 채플시간이 반가울 리 없었다. 필수로 이수해야 하니 억지로 끌려가듯 참석했다.
집하고 학교는 거의 두 시간 거리여서 채플이 있는 날은 아침 일찍 집에서 떠나야 했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대부분 시작할 즈음이어서 헐레벌떡 강당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계단을 뛰어야 했다. 그렇게 참석한 채플시간에 설교말씀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옆에 앉은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딴짓을 했다.
대학교 때도 친구를 따라 교회를 간 적은 있다.
대학교에 입학해 처음 사귄 친구가 자기 교회에 가자고 해서 한 번 따라간 적이 있다. 하지만 뭔가 어색하고 따뜻한 환대의 느낌은 받지 못했다고 기억이 된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다니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의 믿음은 어디로 가버린 건지...
부모님은 선데이 크리스천이셨다.
부모님은 교양강좌를 듣는 느낌으로 두 분만 교회를 다니셨다. 교회는 장충동에 있었는데 예배가 끝나고 오장동 함흥냉면을 꼭 먹으러 갔다.
유일하게 교회를 따라갔던 이유는 함흥냉면이 먹고 싶어서였다. 그나마도 몇 번 손에 꼽을 정도였다.
사람의 내면에는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대학생활동안 가뭄에 콩 나듯 교회를 갔었고 당연히 마음속 한 구석이 텅 빈 느낌이었던 것 같다. 마치 영혼이 목마른 느낌이었다고 할까?
하지만 그 당시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뒤돌아 보면 참 무미건조한 대학시절이었다. 5명의 친구들과 어울리기는 했으나 다들 다이어트를 한다고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닌 기억도 거의 없고 맨날 카페에 앉아 식빵을 뜯어먹은 기억이 대부분이다.
청춘, 낭만, 추억과는 거리가 먼...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심심한 대학생활을 쓰려니 글도 참 재미가 없다.
하나님은 이런 나를 지켜보시며 어떤 마음이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