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 특성상 3학년 때부터 선을 봤다. 그 당시엔 대학을 졸업하면 1~2년 안에 결혼하는 게 당연하게 생각되던 시절이었다. 26살만 돼도 '왜 아직 결혼을 안 하지?'라는 시선으로 쳐다볼 정도였으니..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24살엔 결혼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24살 화창한 봄날 아빠와 예전부터 잘 아시던 분의 아들과 선을 봤다. 장로님과 권사님 집안이라고 했다.
난 교회생활을 제대로 해 본 적도 없고 세례도 받지 않았었기에 장로님이 뭔지 권사님이 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서로 아는 집안의 자녀끼리의 결혼은 당사자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급속도로 진행이 되었다.
그렇게 독실한 크리스천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다. 모든 집안 행사가 교회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였다.
우리 집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에 문화충격을 받을 정도였으니...
결혼이 결정된 순간부터 한 주도 교회를 빠질 수 없었다. 교회를 안 간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혼하고 9개월 후 세례도 받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찾아왔다. 난 예배시간마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졸렸는지 정말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새로 결혼한 수석장로님의 며느리가 예배시간마다 고개를 꾸벅거리며 조는 걸 사람들이 봤을걸 생각하니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6년 동안 시집살이를 했었는데 (전) 시어머니와 아침마다 가정예배를 드려야 했다.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문제는 기도시간이었다. (전) 시어머니는 자녀들 가족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1시간도 넘게 기도를 하셨다. 그 시간에도 보통 20~30분이 넘어가면 난 잠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의무적으로 했던 신앙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다. 믿음이라는 게 갑자기 막 생기는 것도 아니고 뭔가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믿음이 자란다는 게 더 힘들었으리라.
(전) 남편은 갈등이 생길 때마다
"네가 성경을 안 읽어서 그래, 기도를 안 해서 그래"
하며 모든 걸 내 잘못이라고, 내가 믿음이 없어서라고 했다. 난 혼란스러웠다.
(전) 시어머니가 성가대에 들어가라고 하면서 무조건 성가대 연습실에 들어가서 앉으라고 했다.
모든 걸 거부할 수 없었다.
그냥 난 믿음이 없으니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혼나지 않으려고 모양만 크리스천인 빈껍데기인 신앙생활이었다.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기 전까진 율법적으로 교회만 왔다 갔다 했다.
사랑의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신 거지? 나에게 하나님은 내가 잘못하면 혼내시려고 날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분이라고 느껴졌었다.
그랬기에 일주일에 교회를 4~5번씩 가면서도 진정한 믿음이 뭔지, 하나님의 사랑이 뭔지 느껴지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었다.
사실 결혼할 당시 난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다고 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3대째 크리스천과 결혼한 게 주님 뜻이었다는 생각은 한다. 단지 더 따뜻하고 사랑이 많은 분위기에서 신앙생활을 했다면 더 빨리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