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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May 26. 2024

나는 강릉의 노는 언니가 되었다

강릉이주 1달 차


연고도 없는 강릉으로 이사 온 지 벌써 1달.

"저희 강릉으로 아예 살러왔어요"라고 말하면 대부분 " 강릉에 연고가 있으세요?"라고 물어보신다.

" 아니요. 아무 연고 없어요 그냥 강릉이 좋아서 온 거예요"라는 대답에 모두들 어이없는 듯 웃으신다.


사실이다.

우린 어떤 계획도 없이 무작정 강릉으로 왔다.

바다가 좋아서, 산이 좋아서, 깨끗한 공기가 좋아서..

용산의 복잡하고 스트레스 많은 삶에 우린 찌들어 있었고 몸도 마음도 쉼이 필요했다.

일단은 안식년처럼 2년 살아보기로 했었는데 우리 마음은 아예 강릉에서 계속 살고 싶다로 기울어져간다.


이사하는 날에는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과연 이렇게 훌쩍 떠나온 게 잘한 일일까?'

하지만 새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서는 바로 오길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밖으로 보이는 논과 밭, 시골집들, 멀리 보이는 대관령의 산능선.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탁 트이며 시원해짐을 느낀다.


반대편 다용도실 창문에선 바다가 보인다. 아침마다 창문을 열고 바다에게 인사한다.

"오늘은 기분이 어때?"

수시로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며 표정도 잘 바뀌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정해진 스케줄이라고는 필라테스 2번, 줌상담 3~4개뿐 나머지는 자유시간이다.

아침마다 남편이 묻는다.

"오늘 스케줄은 어떻게 돼요?"

"상담 하나하고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럼 오늘은 어디 갈까요?"

"글쎄요. 당신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정말 한량 부부의 대화다.



둘 다 P성향의 우리 부부는 이런 즉흥적인 행동을 자연스럽게 한다.

계획 없었어도 갑자기 "어디 갈까요?" 하면 "좋아요"라고 하고 계획했다가도 언제든 수정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4군데 이상 다닌 날도 있고 그런 다음 날은 하루종일 침대에서 뒹굴댄다.

그래도 쿵작이 맞으니 다행이다.


핑의자를 트렁크에 싣고 다니다가 햇볕 좋은 날은 무작정 해변으로 내려가 의자를 펴고 한동안

햇살을 만끽하며 파도를 바라본다.

내 인생에 이런 축복 같은 날들이 있으리라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남편도 행복해하면서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도 되는 건가? 미안한 마음이 드네"라고 혼자서 되뇌곤 한다.

그럴 때면 "당신 그동안 충분히 힘들었잖아요.

미안해하지 말고 그냥 감사하고 행복을 누리면 돼요"라고 말해준다.




지금까지 정말 많은 곳을 다녔다.

주문진 5일장을 시작으로

심리상담카페인 '카페 아물다'

영진해변

강릉 아산병원

오대산 국립공원

고래책방

죽도해변

초당할머니순두부

심곡항 해안도로

인제 용대리 황탯국

이팝 심리상담카페

경포호에서 자전거 타기

강릉원주대 수영장

하조대 해수욕장

하조대 평양냉면

주문진 어민 수산시장

사천해변에 있는 카페 쉘리스, 카페 브리엘

원강희과자점

카페 브라운베리

카페 기와

비 필라테스

사천물회전문

영진횟집

솔향추어탕

사천면옥

감자옹심이

오로지 김밥카페등..


이밖에도 이름이 생각 안나는 곳도 많다.

1달 동안 얼마나 다녔는지 나도 궁금해서 정리해 본 거고 인상적인 곳들은 앞으로 더 써볼 생각이다.

강릉에 25년 산 대학원 후배샘이 날더러 자기보다 아는 곳이 더 많은 것 같다며 놀랐다.

'호기심 열정 부부'의 에너지를 당할 사람이 있으랴?

강릉에 오면 여유 있게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쓰려고 했는데 호기심 많은 부부는 집에 가만히 있기가 힘들다.


날씨가 쨍하면 쨍한 대로 비가 오고 흐리면 흐린 대로

자연이 우리를 유혹한다.

일단은 실컷 구경하고, 먹고, 경험해야 좀 안정을 할 것 같은데...

새로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니 언제나 그런 마음이 들는지...


한번 놀만큼 놀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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