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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Mar 06. 2024

이기적인 딸이라는 죄책감


너는 너밖에 몰라. 왜 그렇게 이기적이니?

엄마가 너희들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지?

엄마한테 전화도 없고, 엄마가 보고 싶지도 않니?




어릴 때부터 이런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난 이기적이고 나쁜 딸이구나..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자랐다. 엄마의 말은 아이 머릿속에 저장되어 수시로 재생된다.


결혼 이후에 사실 엄마한테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 통화하지 않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안에서 죄책감이 올라왔다.


'전화한 지 오래돼서 엄마 또 화났을 텐데..'

'난 왜 엄마한테 전화하기가 이렇게 싫을까? 엄마 말대로 난 나밖에 모르는 나쁜 딸인가 보다.'

이런 생각에 죄책감이 올라왔고 그럴수록 더 전화하기 싫어졌다.


그러다 마지못해 전화를 하면 역시나 엄마는 차가운 목소리로 날 비난했다. 그러다 나도 엄마 뜻에 어긋나는 태도와 말을 하면 엄마는 쌩~하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고 나면 난 악몽에 시달렸다. 너무나 무섭고 섬찟한..


딸이 이렇게 엄마를 피하고 싶어 한다면 당연히 그런 이유가 있었던 거다. 사랑해 주는데 이렇게 엄마를 피하는 딸이 있으랴? 사랑은 내리사랑이니까 엄마가 먼저 딸을 사랑해 줘야 딸도 엄마에게 다가가는 게 당연한 이치다.


만나면 가시 돋친 말을 하고 비난하는 엄마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건 딸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자기를 돌아보고 반추하는 능력이 없다. 모든 걸 상대에게 책임전가한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도 평생을 괴롭힌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만큼 부모의 말은 자녀에게 엄청난 힘이 있다.

그리고 죄책감은 참고 견디기 힘든 감정이다. 부정적 메시지를 듣고 자랐으니 자존감이 높아질 수가 없다. 그걸 나르시시스트 부모들은 너무 잘 알고 그걸로 자식을 통제한다. 게다가 자기 연민이 있는 엄마가 동정심 유발까지 하면 자식은 속수무책으로 컨트롤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이럴 수가 있냐?"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자식이 있으랴?




어제 그런 엄마의 비난을 듣고 자란 내담자가 상담하러 왔다.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었으나 그건 엄마가 원하는 기준에 못 미치는 삶이었기에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끊임없이 잘 나가는 다른 딸들과 비교하며 내담자를 비하했다.

" 내가 너한테 투자한 돈이 얼만데.. 네 친구 ㅇㅇ는 교수도 되었는데 넌 뭐 하고 사냐?"

"네가 게으르고 노력을 안 하니 그 정도로밖에 못 사는 거야"

" 그렇게 살면 엄마가 너한테 재산 남겨주지 않을 거다"


이 어머니는 죄책감으로 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돈으로도 딸을 컨트롤하셨다. 딸은 어릴 때부터 돈으로 컨트롤당해 왔기에 거기에 길들여져 살아왔다.  그러면 더 자신이 나쁜 딸인 것처럼 느껴진다.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할 수가 없다. 그러니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이 오고 끊임없이 엄마가 했던 대로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하게 된다.


머리로는 엄마가 잘못했다는 걸 아나 마음에서 완전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바로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오랜 시간 가스라이팅 당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부모가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그 초점이 자식의 행복에 있기보단 자신에게 있다. 자식을 자신의 트로피로 생각하니 자식이 잘 되는 게 자기 성적표라고 느끼는 거다.


혼자의 힘으로 가스라이팅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자신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세뇌를 당했기 때문이다. 올바른 성인인 상담자에게 객관적인 피드백을 듣는 게 중요한다. 그러면서 안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 상담하고 나니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아요. 혼란스럽던 마음도 정리가 되고요."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내담자가 카톡을 보내왔다.

" 그래요. 다행이에요. ㅇㅇ씨 인생이고 ㅇㅇ씨가 잘못한 거 없으니 죄책감에서 벗어나 마음 편하게 사세요. 그리고 아까 추천해 준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책 꼭 읽어보세요."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일!!

'자신의 삶을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말해 주는 것' 이게 바로 내가 누군가에게 절실히 바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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