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코리아였던 우리 엄마의 미모는 모든 사람을 경탄하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학교에 오시면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교무실로 엄마를 보러 갔다.
“우와 너네 어머니 진짜 예쁘시다!!”
아마도 그 이후엔 ‘그런데 너는 왜 그래? 하나도 안 닮았어’라는 말을 하고 싶었겠지. 난 아빠를 닮아 순한 눈에 착하게 생긴 아이였다.
우리 집안은 외모지상주의였고 내 밑에 큰 남동생, 여동생, 막내 남동생이 있는데 그중에서 큰 남동생과 여동생의 외모가 뛰어났다.
당연히 엄마는 그 둘을 편애했다.
사춘기 시절부터 난 우울해지고 끊임없이 여동생과 비교를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자존감은 바닥으로 내려갔고 내 스스로 미운 오리 새끼라고 생각했다.
하물며 가족들이 외식을 할 때도 못생긴 내가 부끄러울까 봐 안 따라 나가기도 했다. 사춘기여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내 안에 수치심이 뿌리 깊게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동생과 한 방을 썼는데 다툼이 생길 때마다 엄마는 항상 여동생 편을 들었다.
난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그것에 대해 항의를 해본 적이 없다. 그냥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 집에서는 미모가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연예인 같이 조막만 한 얼굴에 너무나 슬림하고 날씬하고 게다가 통통 튀는 성격까지 지닌 여동생은 항상 좋다는 남자가 주위에 넘쳐났다.
게다가 패션 감각까지 있어서 너무나 멋스럽게 옷도 잘 입었다. 나에게 여동생은 감히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난 그런 동생이 질투도 났지만 자랑스럽기도 해서 동생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자랑을 했었다.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루는 백화점에서 동생과 같이 지나가다가 학부형을 만났다.
우리 딸의 학부형인 그 사람은 평소에 날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 동생을 보자 진심으로 놀라며
“ 어머나 언니 동생분이 너무 예뻐요. 친자매 맞아요? 그런데 하나도 안 닮았네요...”.
“ 네 우리 형제들은 넷이 다 다르게 생겼어요”라고 대답하며 마음속에선 씁쓸함을 느꼈었다.
어디를 가나 동생과 같이 다니면 동생은 주인공이고 인기가 많고 난 존재감이 없어졌다.
정상체중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너무 뚱뚱하게 느껴졌고 너무 못생긴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 동생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만나기만 하면 그런 열등감을 느껴야 하니....
그런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했는지도 모르겠다.
40대 이후에 상담 공부를 하며 나의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상담도 받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