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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는 남자

나와 함께 갈테오?

by 정민유


연애 초기 아직은 서로 서먹했을 때다.

토요일 오후.

"띠리리링" 그의 전화였다.

한 두 번도 울리기 전에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담백한 그의 목소리.

"네 "

"오늘 뭐해요?"

" 뭐 특별한 계획은 없는데요"

"예전에 같이 일하던 후배가 3년 만에 전화가 왔는데 지금 양평에 산대요. 그런데 오늘 오라고 하네요"

"아... 그럼 거기 가야겠네요?"

그와 만날 거라 기대했던 나는 여기까지 듣고는

'아... 양평에 가야 해서 오늘 못 만난다는 얘기구나.' 하면서 시무룩해졌다.


그런데 그의 그다음 멘트

"나와 함께 갈테오?"

"나도 같이 가도 돼요?"

"그럼요!! 당신만 불편하지 않다면 난 같이 가는 게 너무 좋죠"

"우와~~ 나도 너무 좋아요. 갈테오란 말 듣고 살짝 설레었어요"


그는 그 이후에도 어디를 가든 나와 함께 가길 원했다. 난 그게 너무 신기했다. 남자동창들 모임에도 같이 가자고 했다.

"남자끼리 모임인데 굳이 내가 가야 돼요? 친구들이 싫어해요"

"괜찮아요. 난 당신이 없으면 하나도 재미가 없어요"

"진짜요? 알겠어요 갈게요"


이전 경험에서(전남편)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모이는 걸 좋아한다는 선입견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그날 남편의 그 말은 나의 뇌리에 각인이 되었다.

'이 남자는 나와 함께 가길 원한다'


그전에 다녔던 미용실 원장님이 오후쯤 예약 취소 전화를 받더니 신나 하시면서

"와이프한테 전화해서 같이 놀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어요"라는 거다.

"여가시간이 생겼을 때 와이프랑 노는 게 제일 재밌으세요?" 놀라는 내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와이프랑 노는 게 제일 편하고 재미있죠"

그 말을 듣고 진심으로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 와이프는 정말 행복하겠다... 생각하며 나도 나랑 노는 걸 제일 재미있다고 하는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했었는데..




그런데 만난 지 얼마 안 된 그가 오랜만에 만나는 후배에게 가는데 '함께 갈테오?'라는 말을 하는 순간 정말 가슴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 감동스러웠다.


존재감!!

어린 시절 존재감 없던 아이..

가족 내에서도 소외감을 느꼈던 아이..

날 원해주고 나와 뭐든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그래서 '갈테오'란 단어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아마 그 말이 우리가 남은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 하겠냐는 암시 같았다고 할까?

나의 남은 인생 동안 "나와 함께 갈테오?"라고 물어볼 필요도 없이 어디든 함께 가는 게 당연한 존재가 생긴 것이다.


우린 단짝 친구 같다.

어디든 함께 다닌다.

남편 친구들과의 모임은 물론이고 장 보러 갈 때도

쇼핑을 갈 때도 병원에 정기검진을 갈 때도.

그래서 상가 여자 사장님들의 미움도 받는다.

뭘 맨날 그렇게 붙어 다니냐고.


이젠 그 미용실 원장님의 마음이 뭔지 알게 되었다.

뭐든 함께 하기 가장 편하고 재미있는 단짝.

만약 지금 같은 상황에서 원장님을 본다면 그렇게 놀라진 않았을 거다.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남편과 나에겐 서로의 존재가 보드라운 양털이불처럼 따스하게 느껴진다.




우리의 새 차의 이름을 '갈테오'라고 붙여주었다.

갈테오는 우리를 전국 어디든 안전하고 편하게 데려다주는 또 하나의 좋은 친구다. 그날 이후 우리의 전국 맛집 투어가 시작되었다. 별로 다녀본 적이 없는 날 데리고 오래되고 유명한 노포들을 데리고 다녔다.


갈테오와 함께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강릉, 속초, 주문진, 양양, 정선, 태백, 용평

전주. 여수, 남해, 통영, 구례, 보은, 대전, 단양 등

셀 수 없이 많은 곳을.

같이 다닌 그곳에서의 추억이 우리의 마음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이젠 남편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나 없는 그도 마찬가지라 믿는다.

존재감,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

오래도록 함께일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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