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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에서 스나쿠를 접수하다.

후쿠오카 스나쿠 습격사건

by 정민유



남편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함께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다.


"어느 나라로 여행 가고 싶어요?"

"난 일본이 가고 싶어요"

"나도 일본 좋아요."


그렇게 목적지는 일본으로 정하고 나서 후쿠오카 패키지여행으로 결정했다.

온천마을도 가고 술 제조하는 곳도 가는 패키지여행이었다.

많은 단체일정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최고의 추억거리는 우리 둘만의 스나쿠 습격사건(?)이었다.


스나쿠는 스낵바라는 일본어로

일본 특유의 술 문화가 있는 곳이다.

주택가 인근에 위치해서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작은 주점이었다.




사실 여행을 할 2019년 여름 즈음 반일감정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그때 일본여행을 한다는 건 국민적으로 지탄을 받을 정도의 일이었다.

한참 전에 예약을 했던 우리는 취소를 해야 하나..?

가도 되려나? 떠나기 2~3일 전까지 심하게 고민을 했다. 결국은 가기로 결정을 했지만 혹시 일본 사람들이 우리에게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낼까 봐 불안했다.


그런데 막상 일본에 가보니 그런 분위기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들 천지였다.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친절한 일본인이란 말이지?'


첫째 날 일정을 마치고 남편과 난

근처 맥주집에 가서 맥주를 한 잔씩 마시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나왔다.



골목길을 도는데 남편이 뭔가를 발견한 듯

"어? 여기 스나쿠가 있네" 하는 것이었다.

"스나쿠가 뭐야?"

"응 동네 주점 같은 곳이야. 난 일본 오면 스나쿠를 꼭 가보고 싶었는데 한 번도 못 가봤어"

"그래? 그럼 가면 되지"

머뭇거리던 그를 제치고 용감한 내가 먼저 거침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영화에서 많이 봤던... 문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계가 나타나는... 그런 느낌이었다.

15평 남짓의 공간.

우리나라 80년대 느낌의 인테리어.

안에는 그 동네 일본 아저씨들로 보이는 10명 내외의 사람들이 술을 한 잔씩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바에는 몇 명의 마담이 계셨는데

정말 푸근한 외모의 평범한 동네 아주머니 느낌이었다. 그중의 한 분이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으며 환대를 해주셨다.


밥집 아주머니처럼 후덕하고 수수한 모습이셨는데 얼마나 명랑하시던 지 우리까지 덩달아 기분이 업 되었다. 그러면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남편에게 날 보며 뭐라고 얘기를 하셨다.


"뭐라고 하셨어?"

"당신이 들어오는 걸 보고 바라(장미)가 들어오는 줄 아셨다네"

" 진짜? 내가 그렇게 꽃처럼 예쁘대?"

" 응 너무너무 예쁘대"

난 그 말이 접대성 멘트인지 아닌지 구분할 필요도 없이 가슴속에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마구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몇 잔의 술을 마시고 난 후

마담이 우리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권유했다.

내향성인 남편은 손사래를 치며 나한테 마이크를 넘겼다. 난 술기운도 올랐겠다, 기분도 완전 좋겠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난 일어서서 관객을 바라보고 섰다.

"굳이 일어서서 안 불러도 돼"

"아니야 난 일어서서 부르는 게 더 좋아"

"자기야 여긴 앉아서 불러도 돼"

"싫다니까~~"

이미 마음이 하늘로 치솟은 흥부자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임재범의 비상!!"

작은 스나쿠 노래방 기기에 한국 노래도 있었다.

한국 여자가 씩씩하게 몸까지 흔들며 한국 가요를 부르니 처음엔 어색하게 쳐다보시던 분들이 같이 호응을 해주시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앵콜"이 들어왔고

난 사양하지 않고 "신성우의 사랑한 후에"

를 또 당당하게 불렀다.


그 이후에도 몇 곡을 더 불렀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그분들은 내 팬클럽 회원들처럼 엄청난 호응과 갈채를 보내주셨다.

그날 흥부자는 제대로 흥 폭발했다!!

그 분위기에 덩달아 들뜬 남편이 손님들에게 술을 쐈다.

마치 노래를 통해 한국과 일본이 하나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처럼 의기양양해졌다. 그곳엔 한일감정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은 울 뻔했다.


손님 중에 젊은 남자가 한 명 있었는데 우리가 앉아있는 바로 다가오더니 나더러 자기가 보이프랜드 하면 안 되겠냐는 거다.

내가 남편을 가리키며 "my boyfriend "라고 했더니 " I am a second boyfriend "란다.

(일본에서도 내 미모가 먹힌단 말이지?)ㅋ

일본에 현지 남친 생길 뻔했다.


남편은 사람들을 만나면 이 날의 에피소드를 의기양양하게 말하곤 한다.

"와이프가 스나쿠 문을 박차고 들어가는데 그렇게 멋지더라고.....(중략)

그 말을 하는 남편 얼굴은 유독 상기된다.


우리의 첫 여행은 스나쿠 습격사건으로 더 빛나게 기억된다.

우리를 '환대'해주던 그 마담의 명랑함이 일본 아줌마의 상징처럼, 커다란 장미처럼 내 맘에 오래도록 새겨져 있다.

그날 있던 사람들의 마음속엔 내가 여장군처럼 씩씩한 이미지로 남았으려나..?

그런데 말이야 초등학교 때 부끄러워서 가창 시험 때 노래 안 불러서 0점 맞았던 아이 맞나?

사람 잘 안 변한다고 하지만 43년의 세월이 나를 이렇게 다른 사람을 만들어 놓았다.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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