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민감자(Empath)에게 세상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오늘 5월 23일. 한 건물의 계단에서 한 시간 반 동안 공황발작을 하다 실신한 지 이제 아흐레가 지났다. 이번엔 정말로 죽을 뻔했었기에, 주 2회 필라테스와 주 2회 웨이트 PT를 제외한 나머지 일정들을 모두 다 취소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동네 카페에 앉아있다가도 6인 이상 인원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면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고, 대중교통 타는 것도 힘들게 됐다. 외식은 꿈도 못 꾼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쿠팡이츠를 이용해 배달시켜 먹고, 이마트몰에서 집으로 식재료를 주문해서 직접 음식을 해 먹게 됐다. 그래도 서서히 나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온갖 예민함을 다 달고 있었다고 한다. 기저귀가 소변으로 참새 눈물만큼 젖어도 앵앵 울어댔고, 젖병의 절반도 먹지 않은 채 잠들어 버려 어른들이 준 분유를 다 먹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만큼 촉각적인 것도 예민했고, 위장 자체도 아주 예민했던 모양이다.
태어나기를 예민하게 태어났는데 세상은 그 예민함을 ‘유별남’으로 취급했다. 걸핏하면 신경성 위장염을 비롯, 신경성 요추부 통증(광배와 척추기립근 염증), 알러지성 결막염, 봄에는 꽃가루 알러지, 여름에는 접촉성 피부염, 가을엔 손목터널 증후군, 겨울엔 콜린성 두드러기로 고생하는 걸 보고도 “인하 네 성격이 지랄 맞아서 그런 신경성 질환에 시달린다.”는 폭력적인 말을 서슴없이 해댔다.
그런 정서 · 언어폭력 속에서, 나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예민함을 억눌렀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티를 내지 않았고, 겉으로는 명랑한 척, 괜찮은 척하며 스스로를 깎았다. 그러자 주변부터 나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믿음직한 장녀, 장손녀’, ‘의지가 되는 친구’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주변 시선이 바뀌어 사람들 사이에 섞일 수가 있었기에,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30년 넘는 세월 동안 스스로를 잃어갔다. 2011년 12월 공황장애가 생긴 후 네 번째 발작증상. 그것도 사흘간 네 번 지속된 공황발작으로 내 육신은 한계치에 도달했다. 2025년 5월 14일 90분의 공황발작, 어지럼증과 과호흡, 그리고 전신 경련이라는 이름의 실신으로 말이다.
30년 넘는 시간 동안 나 스스로를 깎아 해함과 동시에, 나를 드러내면 이상한 인간 취급을 많이 받았기에, 스스로에 대해 탐구하기 위해 최근 6년간 심리학적이고 정신분석학적 접근을 해왔다. 의문점은 딱 하나였다. ‘왜 나는 세상의 기준과 다를까,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2018년 10월 12일 두 번째 공황발작 이후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한 후, 신경정신과에 가 2년 10개월간 섭취할 수 있는 호르몬제 최대치를 먹으며 심리상담을 진행했다. 2022년 6월 20일 세 번째 공황발작 직전에는 트라우마가 너무 심해 무의식에서 트라우마를 제거하려고 최면심리상담 20시간 세션을 진행했다. 신경정신과에서는 프로이트를, 최면심리상담에서는 융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노력을 했음에도,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미국 UCLA 임상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주디스 올로프(Judith Orloff)의 저서 『나는 초민감자입니다(원제: The Empath’s Survival Guide)』. 그 책을 읽고 나서 모든 의문과 괴리가 해소되었다. 세상이 왜 그토록 내게 폭력적이고 잔혹했는지 말이다.
책의 내용은 이러하다.
《나는 초민감자입니다》
1. 초민감자(empath)란 누구인가?
- 남들보다 감정, 에너지, 분위기, 신체 감각에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
- 타인의 감정이나 심리상태를 자신의 것처럼 흡수하거나,
신체적·정서적 에너지의 영향까지 강하게 받는 존재
-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과는 다르다.
단순한 공감이 아닌, 타인의 감정/에너지를 실제로 ‘느끼고’,
때로는 ‘흡수’해 소진되기까지 함
2. 초민감자가 겪는 어려움
- 감정적 피로: 타인의 슬픔, 불안, 분노, 두려움 등 부정적 감정에 휩쓸려 쉽게 번아웃
- 에너지 뱀파이어: 주변을 감정적으로 ‘흡수’만 하는 사람
(부정적 에너지, 자기중심적, 늘 불평하는 사람 등) 때문에 탈진
- 군중/소음/혼잡: 시끄럽거나 복잡한 환경에 압도당하고, 쉽게 피로감을 느낌
- 경계 문제: “싫다”거나 “노(NO)”라고 말하기 어려워하고, 타인의 문제까지 떠안는 경향
- 신체화: 타인의 신체적 증상이나 아픔까지 느끼는 경우도 있음
3. 초민감자 유형
- 정서적 공감자: 감정에 특히 민감
- 에너지 공감자: 타인의 에너지, 분위기를 강하게 감지
- 신체적 공감자: 타인의 신체적 증상을 자신이 느끼는 유형
- 직관적 공감자: 영감, 직관, 꿈 등으로 남의 감정·상황을 읽음
4. 초민감자의 생존 전략
- 경계 세우기: 심리적·물리적 경계(선 긋기), 감정적으로 ‘아니요’라고 말하는 연습
- 자기 보호의식 강화: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구분하기, ‘내 것/남의 것’ 구별 훈련
- 에너지 관리: 자연 속 산책, 명상, 혼자만의 시간 갖기 등으로 자기 에너지 재충전
- 독성 관계/에너지 뱀파이어 피하기: 감정적으로 소모적인 관계에서 벗어나기
- 셀프케어 루틴: 규칙적인 수면, 건강한 식사, 운동 등 기본적 자기 돌봄 습관
5. 초민감자의 힘과 성장
- 과민함’이 약점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치유하는 강점임을 인식
- 감정, 에너지, 직관을 활용해 타인을 이해하고 돕는 능력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것
- 자기만의 경계와 보호, 회복 방법을 꾸준히 실천하면 ‘세상에 필요한 선물’이 될 수 있다고 격려
6. 실전 Q&A·자기 진단·연습문제
- 자신이 어떤 유형의 empath인지 확인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 제공
- 다양한 현실 상황별 대처법(회사, 연애, 가족 등)
- 명상, 상상훈련, 경계 세우기 등 실습법 수록
그랬다. 나는 초민감자(Empath)라고 불리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HSP; High Sensitive Person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더라...) 심지어 3번 항목인 ‘초민감자 유형’에서는 네 가지 다 해당되는... 초 X4 민감자였던 거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에너지 뱀파이어들이 너무나 많다. 주로 ‘내가 너를 신뢰해’ 식으로 상담을 유도하며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는 에너지 뱀파이어들. 가정에서는 부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에너지 뱀파이어 대마왕 하나, 그리고 대마왕과 함께 살기 위해 자아를 꺾어버린 회피형 에너지 뱀파이어 가족구성원 둘.
문제는 내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면, 에너지 뱀파이어짓도 적당히 받아주고 넘어갈 텐데, 지금 내 상황이 그럴 상황이 아니어서 그 에너지 뱀파이어들의 말 한마디, 토씨 하나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진다는 거다. 어찌 그리 쉽게 “얼른 나아야지.”, “힘내.”, “파이팅.”, (뭔가를 했다고 하면)“잘했네.”, “그만 울어.” 같은 말들을 던지는지.
‘얼른 나으라’는 말이나, ‘힘내’, ‘파이팅’ 같은 말은, 안 그래도 얼른 낫고자 노력하고 있는 내 등에 채찍질하는 말이라는 걸 왜 모르는 걸까. ‘잘했네’ 같은 경우는, 내 상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줄 의료종사자나 치료자의 위치에 있지도 않은 사람이 나를 아래로 내리깔고 우위에서 던지는 평가의 말이라는 걸, 왜 모르는 걸까. ‘그만 울라’는 말은, 감정 해소가 안 돼 내 안에서 화가 쌓여 몸이 고장 나있는 걸 고치지 말란 말이자, 죽으란 말이라는 걸 왜 모르는 걸까.
그래서 나는 2000년대 초반 싸이월드를 개설한 이후 처음, 내 의지로 5월 19일 네이버와 브런치를 제외한 나머지 SNS 계정 모두를 비활성화로 바꿨다. 특히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둘은 피드와 스토리에 올라오는 지인들의 모든 게시물에서 그들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위선이 읽혀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SNS에 무슨 글이라도 올리면, 곧바로 DM이나 카톡으로 ‘괜찮냐’며 연락하는 사람들. 그들의 관심이 진짜 걱정이라기보다 내 상태를 기웃거리며 감정 쓰레기통 삼으려는 의도라는 게 이제는 너무 잘 보인다.
물론 이 이야기를 읽은 해당인들은 “나는 너를 걱정해서 연락했어.”라고 하겠지. 하지만 순수하게 나를 걱정만 한 이들은, 내 상태를 짧게만 확인하고 말꼬리를 잡지 않은 채 빨리 대화를 종료하거나, 최근에 내가 정말 힘들어했던 걸 알아서 연락조차 안 하고 놔두더란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공개 인터넷 공간인 브런치에 선언한다. 나는 초민감자라고 번역하는 엠패스형 인간이다. 그러니 내가 계속해서 삶을 이어가는 걸 보고 싶으면, 제발 아무 말이나 던지지 말고, 정서적 폭력도 휘두르지 말라고. 내 신체는 이미 한계에 부딪혔고, 더 이상 에너지 뱀파이어들의 폭력을 견딜 힘조차 남아있지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