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에 대한 기억
지난 연휴에 대마도를 다녀오고 나서 한 차례 바쁜 시기를 보냈더니 여행 복기도 하지 못한 채 2월이 끝나버릴 기세다. 여행기 계획만 세웠다 번번이 실패하는 이 나쁜 버릇 좀 고쳐야 할 텐데. 아무튼 사진은 남아있어서 기억의 조각을 모아 본다.
사진은 대마도에 세워진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 앞에서 찍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꽃이 활짝 피었더라. 기념비에 얽힌 이야기를 생각하면 얄궂은 일이다. 기념비는 덕혜옹주와 대마도 왕실의 후계자 종무지(소 다케유키)와의 결혼을 축하하고 있지만 덕혜옹주는 결혼 후에 정신분열증을 앓았다. 부모를 떠나보내고 타향에서 하는 정략결혼이었다.
대마도주 종무지는 백작이자 후에 영문과 교수를 역임한 학자이자 시인이었다. 종무지와 덕혜옹주는 15년의 결혼생활을 끝으로 이혼했다.(종무지에 대한 평가가 나뉘지만 덕혜옹주를 정신병원에 방치한 점은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1962년 덕혜옹주가 귀국한 뒤로도 둘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1972년 한국을 방문한 종무지가 덕혜옹주를 만나려 했지만 증상이 나빠질 것을 우려한 주위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듯하다.
‘한 인간의 고뇌가 세상의 고통이며, 세상의 불행이 한 인간의 슬픔’(『사소한 부탁』)이라는 황현산 선생의 말은 이럴 때 쓸 수 있을 것 같다. 봉축 기념비를 보는 동안 세상의 불행이 한 사람의 삶에 너무 가혹하게 파고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부당함이 한 사람의 마음을 해치고 있는지도 모르고. 아마 그럴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이 이렇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외롭고 괴로운 것인데 그 앞에는 꽃이 붉게 활짝 폈다. 아무런 힐난이나 위안도 없이. 버티는 것도 삶이고 맘껏 흐느끼는 것도 삶이라는 듯이. 정말이지 삶이란 뭘까. 도통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다시 대마도 저 자리로 간다 해도 무어라 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종종 우리는 꽃 앞에 서야 할 때가 있다. 그래야 할 것 같다.(2019.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