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 소설 <적과 흑>을 읽고서
요즘 몇 안 되는 삶의 낙을 책임지고 있는 <적과 흑>. 틈틈이 읽어 내려가는 중인데 몰입감이 상당하다.
소확행의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출세 이야기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나폴레옹을 선망하는 야심가 쥘리앵 소렐이 어디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게 이 소설의 재미요소다.
섬세한 심리묘사도 작품 읽기의 재미에 한몫한다. 쥘리앵의 후견인이 되어주는 여러 귀족, 사제들 모두 하나같이 독특하면서도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나폴레옹의 집권과 몰락 이후 왕과 귀족이 다시 득세하면서 왕당파와 자유주의자가 서로 대립하던 시대다. 어떤 이는 돈을 좇고 더러는 명예를 좇는다. 드물게는 사랑을 좇기도 하고.
주인공 쥘리앵 소렐은 속물이면서 순수한 인물이다. 자신과 달리 부를 타고난 자들을 경멸하면서 속으로는 이해득실 계산을 그치지 않는 인물. 모든 사람을 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모든 이들에게 호의를 얻을 수 있는 인물. 한 사람을 죽을 듯이 사랑하면서도 사랑의 '의무'와 '기쁨'을 저울질하는 인물.
이렇듯 겉과 속이 다른 쥘리앵이 소설 속에서 가장 순수한 인물일 수 있는 이유는 순박하게도 포기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부도, 남들의 호의도, 사랑도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줄 모르고 모두 갖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가장 속된 사람들이 저마다 하나씩 가진 것을 안고 손쉽게 삶의 지름길로 접어들 때 쥘리앵은 쉬지 않고 걸어간다. 멀리 않은 곳에 파멸이 준비돼 있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씩씩하게.
그래서 쥘리앵은 이야기에 부합하는 인물이고 이야기 그 자체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이 결국 실패하는 시간과 공간, 감정 그 모든 것이다. 인간이 부단히 걸어가는 발걸음이다. 일상에 갇혀 잠시 주저앉은 이에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아 아무것도 실패할 게 없는 이에게 쥘리앵의 발걸음 소리가 감미로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