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삼요소 장강명 작가 북토크 후기(를 빙자한 녹취록)
(읽고 쓰기, 또는 당신이 세상을 만드는 방식 <上>에 이어서)
Q. 작가님의 신작 단편소설집 <산자들>을 읽고 있으며 영화 <기생충>이 생각납니다. 작가님의 르포에서 ‘거대한 악의가 없어도 고통과 부조리가 발생할 수 있다’고 쓰셨는데 좀 더 자세한 얘기 부탁드립니다.
A. ‘헬조선’의 이유는 뭘까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시스템 전체가 잘못됐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쳐요. 악당이 ‘내일은 누구를 또 괴롭히지?’라고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닌데도 그래요. 다들 기를 쓰고 잘해보려고 하는데 잘 안되고. 정확히 뭐가 잘못됐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느끼는 게 무력감이죠. 좌절감.
저는 이럴 때 부조리에 ‘반응’을 하면 안 되고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댓글로 누구를 처단해라 라고 쓰고 끝내서는 안 되는 거죠. 저는 신문에 실리는 추상적인 칼럼을 별로 안 좋아해요. 각자의 문제는 각자가 쓸 수밖에 없거든요. 버스 운전기사의 이야기는 버스 운전기사가, 취업준비생의 이야기는 취업준비생이 쓸 수밖에 없어요.
한 가지 사례로, 제가 요즘 고등학생들이 청중으로 있는 강연에 가면 서로 놀라요. 부끄럽지만 저는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라 ‘수시제도’가 뭔지 몰랐어요. 고등학생들은 그런 저를 보고 놀라요. 너무 당연한 걸 제가 모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마 저 말고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문제는 지금 대입 제도에서 거대한 비중을 가진 제도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 상당수이라는 거죠. 지금 20,30대에게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40,50대는 몰라요. 사회가 그만큼 많이 파편화됐다는 거죠.
흔히들 본인의 얘기가 너무 흔한 문제라고 생각해서 글로 쓰지 않지만 그렇지 않아요. 누군가 쓰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알 수가 없어요. 만약 자신이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해답이 있다면 그건 정말 중요한 거고 알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Q.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불평등은 무엇인가요?
A. 음, 우선 불평등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을 해요. 영국의 브렉시트나 홍콩의 시위 등을 볼 때 뭔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거 같아요. 얼마 전에 홍콩에서 온 지인을 만났는데 거기는 여기보다 더 심하다고 하더라고요. 홍콩의 대학생들은 한국보다도 더 심한 무기력함에 빠져있다고. 그, 왜 자동차를 안 사고 또 못 사는 게 전 세계적인 경향이라고 하잖아요. 본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부모를 잘 만나고 못 만나는 거에 많은 부분들이 결정되기도 하고…….
답을 찾아야 하는 때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스트레스가 쌓이면 파국이 오거든요. 홍콩에서 왔다는 그 지인이랑 이런 얘기를 했어요. 1차, 2차 세계대전이 다가오기 전에 사람들은 그런 큰 전쟁이 벌어질 줄 알았을까? 보통 큰 사건들이 벌어지기 전에 징후 같은 게 보이잖아요. 제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그 지인이 너무 무섭다는 거예요. 이런 얘기를 들은 게 처음이 아니래요. 그렇다고 전쟁이 난다는 건 아니지만!(웃음) 비관할 필요는 없지만 나쁜 상황이 저절로 고쳐질 거 같지는 않아요. (바꿔가는 게) 우리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Q. 다른 지면을 통해 ‘불행해도 의미 있는 삶’이라는 얘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 어떤 뜻인가요?
A. 한국사회에 행복 담론이 많이 퍼져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만으로 괜찮은지 되돌아보게 되는 거죠. 가령 제가 여러분께 사이비 종교의 중간 간부인데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면 그렇다고 답하는 분이 없는 거랑 같다고 봐요. 물론 제일 좋은 건 행복하면서 의미가 있는 거지만 행복과 의미가 충돌할 때 어느 정도 행복을 거부할 줄 아는 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등단을 하거나 당선이 되기 위해 따라가야 하는 트렌드 같은 게 있을까요?
A. 저는 ‘No’라고 답하고 싶어요. 최근 문단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 건 맞아요. 그렇다고 해서 어떤 트렌드에 맞춰 소설을 쓰면 늦어요. 오죽하면 문학상 심사평에 ‘너무 늦게 도착한 OO 식의 작품’이라는 말이 나오겠어요. 소설을 한 편 쓰는데 2~3년이 걸리잖아요. 트렌드는 그전에 바뀌어요. 사실 트렌드로 성공할 수 있는 건 그 깃발을 처음 들고 나온 몇몇 사람이 아닌가 해요.
그리고 문학에서 트렌드라는 건 누가 예측해서 쓴다기보다는 당시 사회랑 조응해서 나타나는 거 같아요. 과거에 한국 사회에서 운동권 문학이 흥했던 이유는 독재 정권이 사람들을 탄압하고, 그걸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문학을 통해서 자유를 말했던 거고요.
90년대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사람들의 마음을 녹인 이유가 뭐겠어요. 한국 사회에 너무 개인이 없다는 거죠. ‘아, 거대한 이야기 말고 혼자 집에 들어서가 맥주 마실 때의 쓸쓸함에 대해 말하고 싶어. 그럴 때 재즈 음악도 있으면 좋겠어.’ 이럴 때 하루키 소설을 읽으면 최고잖아요.(웃음) 지금은 또 다르죠. ‘우리 이제 섬세해질 대로 섬세해졌는데. 이제 개인의 이야기 말고 한국사회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라는 생각을 하잖아요. 그래서 오늘날 소설을 통해 혐오와 차별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죠.
Q. 작가님께서는 작 중에서 신문기사나 보도를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장치로 사용하시고는 하는데요. 혹시 향후에 언론을 주제로 작품을 쓰실 생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언론을 주제로 소설을 생각은, 조금 있지만 1순위는 아니에요. 과거에 잠깐 생각해본 적 있지만 제가 구상하고 있는 또 다른 주제들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언론이나 이를 둘러싼 환경이 너무 빨리 바뀌어서, 제가 퇴사했던 6년 전과 지금의 언론은 또 다를 거 같아요.
Q. 사회고발 소설과 SF소설을 오가면서 집필하시는데 소설마다 일관되게 적용하는 원칙이 있으신가요?
A. ‘독자를 우습게 보지 말자’, ‘최선을 다해 써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같은 게 아니면 딱히 원칙을 생각하면서 소설을 쓴 적은 없어요. 다만, 이제 겨우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감을 조금 잡은 거 같은데, 저는 먼가 불편한 지점에 대해 앞뒤로 스토리를 입히는 스타일인 거 같아요.
그리고 사회고발 소설과 SF소설이 서로 크게 다른 거 같지도 않아요. 가령 제가 ‘타다-택시 갈등’에 대해 쓴다고 할 때, 10년 전에 모빌리티 플랫폼인 타다와 택시업계의 분쟁을 쓰면 SF라는 얘기를 들었을 거예요. 지금은 사회고발이고요. 게다가 어떻게 보면 타다와 택시 갈등은 찻잔 속 태풍이 될 수도 있어요. 10년 내에 자율주행차가 도입될 거라는데 그렇다면 운수업을 하시는 분들은 모두 어떻게 될 건지 생각해보게 되죠.
그런 시나리오를 생각해본 적 있어요. 훗날에 무인자동차가 사고율 0%를 자랑하게 될 때 택시기사, 트럭 운전사, 대리기사 이런 분들이 무인자동차가 사고를 낼 수밖에 없는 방법을 고심하게 되는 장면을요. 결국 그분들이 동시에 차 앞, 뒤, 옆에 뛰어들어야 하는 거죠. 그럼 그분들은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 걸까’하면서 중앙분리대에 서서 벌벌 떨게 되겠죠. 그런 장면을 떠올리면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한국 사회에서 운수업이 차지하는 규모가 작지 않아요. 지금은 그분들에게 재교육받아서 다른 일자리 찾으라고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Q. 어느 지면에서 아직 개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고 쓰셨는데 개를 키우는 걸 미루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저랑 비슷한 분들을 종종 보는데, 개를 너무 좋아해서요. 떠나는 것도 봐야 하고 그럴 때 너무 마음이 아플 거 같아서 아직 키우지 못하고 있어요.
Q. 작가님 인생 책은 무엇인가요?
A. 제 인생 책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에요. 인생 책이라는 게 꼭 좋은 것만 주는 건 아니잖아요. <악령>은 당시 제 마음을 막 할퀴고 갔거든요. 그다음부터 성당을 안 나가게 됐어요. 정말로 제 인생을 바꾼 책이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