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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hyuk kim Aug 12. 2020

좋은 삶은 좋은 쉼이어야 한다고

부끄럽지만 지난 3일간은 내 여름휴가였다. 아무런 호들갑도 떠들지 않았느냐고? 맞다. 그런데 어디 갔다고 티를 안 낸 게 아니라 정말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았다. 꼼짝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나마 다닌 거라곤 집 앞 스타벅스와 복싱장 정도.(아, 방을 알아보러 다니긴 했다.)      


어딘가를 같이 갈 사람도, 가고 싶은 곳도 없어서.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본가가 있는 대구에도 내려가지 않았다. 부모님과 작은 불화가 있었다. 불효라고 쓰는 편이 더 정확하겠지만.      


친구들이 있는 대전에 갈까 하다가 그것도 관뒀다. 짐을 싸고 서울역엘 가고 기차를 타고 또 지하철과 버스를 탈 엄두가 안 나서. 지난 2년간 가족을 보러, 친구를 만나러, 또 연인을 만나러 서울이며 부산이며 타지를 오가는 일이 정말 많았다. 이제는 도무지 이동하고 싶지 않았다. ‘올 테면 오라지. 나는 못 간다’는 심보가 내 안에서 똬리를 틀었다.      


혼자서 어디론가 갈 마음도 나지 않았다. 그냥 이불속으로 몸을 파묻고만 싶었다. 지내는 곳(친구집ㅎ.ㅎ)에서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다. 집에서 쉬면 책이라도 많이 읽겠지 했지만. 어림도 없지.      


누워서 카트라이더 조금 하다가 바람의 나라 조금 하다가 넷플릭스 조금 보다 말고 ‘시발 이게 다 뭐람’ 하고 일어나서 하는 거라곤 동네를 조금 걷다가 스타벅스에 들어가 커피를 한잔 마시는 것뿐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두 달이나 지낸 동네지만 아직도 낯설어서 때로는 이것도 여행처럼 느껴졌다.      


지난주 금요일은 정말 힘들었다. 동분서주하느라 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가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셔츠가 다 마를 때까지 야근을 했다. 격무 뒤에 온 게 휴가였으니 망정이지 만약 출근이었다면 너 죽고 나 죽자는 생각을 품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걸 다행이라고 쓰고 싶지는 않다. ‘병 주고 약 주고’에 가깝겠다.     


그래도 이번 여름휴가에서 얻은 게 아예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 내 정신적인 체력의 한계를 알게 됐다는 것. 업무 특성상 매일 정해진 업무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점, 외부 접촉이 많은 점 등을 고려하더라도 스트레스를 비롯해 더 이상 스스로를 궁지로 모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정도가 되면 내가 더 이상 버틸 수 없겠구나. 위험하구나’ 라는 걸 체감했다. 어딘가를 부지런히 다니고 강연을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감상하고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고 의미를 부여하고. 그 모든 게 삶을 지속할 수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덧붙이자면 체력적인 문제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내 감정과 집중력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늦은 저녁, 복싱 훈련을 하고 난 다음날 아침 도무지 정신을 차질 수가 없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낮까지도 노곤한 상태가 지속됐다. 훈련의 여파가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평소에는 그 상태로 출근을 하고 일을 하려고 했으니 머리와 눈이 무거운 것도 이해가 간다. 요즘 거의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이 복싱이라 포기할 수는 없지만 한동안 무리한 훈련을 삼가야 할 거 같다. 적어도 복싱과 독서를 하루에 모두 즐기려는 욕심은 좀 내려놓아야겠다.      


이번 여름휴가가 어떻게 기억될지는 모르겠다. 여행도, 추억도, 사진도 남은 게 없으니 조금은 무미건조하고 평범한 며칠로 기억될지도. 그래도. 잘 쉬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뭔가를 해내는 게 삶이 아니라 잘 쉬는 게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도 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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