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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ee An Oct 22. 2016

런던 발 비둘기

"Jesus, please find my proper place"

 때때로는 진기한 일들, 그러나 대체로는 작고 소소한 기쁨들로 삶이 채워지고 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일상은 대체로 매일 비슷한 모양새로 반복된다. 그래서 작은 것들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법을 자연스레 체득한다. 밤늦은 산책을 하다 입김이 나오면 아, 겨울이구나 하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맥주가 한 캔에 1파운드뿐 안 하니 어차피 두 캔 이상 마시지도 못할 것이면서 즐거워한다. 



 낮잠을 자다가 급히 한국에 돌아가게 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의 나는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사려고 했던 에코백을 사지도 못하고, 테이트 모던 야간 개장을 가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한국에 돌아와 버렸다며 원통하게 눈물 흘리다 잠에서 깼다. 내가 얼마나 이 곳을 좋아하는지 알겠지. 



 "Jesus, please find my proper place"라는 가사의 노래가 지금 막 흘러나온다. 이 곳에서 나는 영원한 이방인, 고작 몇 달 머물다 돌아갈 사람이지만 이 곳이 내 "proper place"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여기를 떠나면 곧 새로운 곳에서 내 "proper place"를 꾸리게 되겠지만, 끊임없이 내 장소를 찾는 여정으로 내 삶을 채우게 되겠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질 수 있는가. 위를 올려다보면 내 삶은 여전히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이전의 나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고요하고 또 동시에 강인한가. 이 말도 못 하게 만족스러운 느낌은 때때로 눈사태처럼 밀려오는 외로움보다 강력해서, 나는 이대로 아주 괜찮습니다,라고 말할 수가 있다. 



 생각해 보니 이건 나 혼자 해낸 것이 아니어서, 이 강인함을 만들어 주었고 또 지금의 내가 두고두고 먹을 만한 추억들을 선사해 준 모든 이들에게 "나는 아주 잘 지냅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런던 발 비둘기를 날려 보내고 싶다. 



 고요하고 선선한 밤, 이 청명한 어둠은 내내 무르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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