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비루한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나를 죽인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로서는 축제를 즐기듯 달뜬 이 분위기를 견딜 재간이 없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에서의 크리스마스는 딱히 나쁠 것이 없었다. 연례행사로 평소에는 가지 않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고, 이런저런 사람들과 먹고 마시며 즐겁고 평화로웠다. 작년 더블린에서는 2주 동안이나 주어진 방학에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침대에서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며 조금씩 죽어갔고, 올해 역시 비슷했다. 물론 작년에는 이런저런 파티에 가거나 플랫 메이트들과 시간을 보냈으며, 올해에도 밥을 잘 차려 먹었고 또 바쁘게 일을 했다.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유럽에서의 나는 크리스마스만 되면 죽어 가는 내면을 살피느라 정신이 혼미하다.
어제는 더블린에서 6개월 가까이 방을 나눠 쓰며 함께 살던 바바라를 만났다. 최근 너무나도 우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가 집이 아니면 어디든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런던에 휴가를 왔단다. 더블린에 살던 로난이라는 친구 또한 최근에 런던에 살고 있어서 그가 바바라를 재워주고 있는데, 오다가다 잠깐 인사하며 본 그 또한 울적함을 숨길 재간이 없어 보였다. 더블린 시절 둘이 술에 취해 들어오면 나와 함께 셋이서 한 방에서 잠을 잤다. 그랬던 우리 모두가 다시 한 시점에 다른 도시에 함께 있다니, 인생은 역시 신기할 따름이다. 바바라와 나는 오랜만에 만나 종일 수다를 떨며 그동안에 생긴 소소한 사건들과 일상을 따라잡았다. 남자, 일, 여행, 사람, 앞으로의 인생에서 원하는 것들 등등. 오래간만에 영어로 종일 대화를 하려니 나중에는 단 것이 필요할 정도였다.
바바라의 말은 그랬다. 크리스마스만 되면 쓸쓸하다고. 자기 가족들은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심지어 통화도 서로 안 하는데 어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은 칠면조를 가족들과 나눠 먹으며 선물을 주고받는지 모르겠다고. 상대적인 박탈감이 든다고. 심지어 가족을 그리워한 적도 한 번도 없다고.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잔인하다고. 그렇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어서 거의 울 뻔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지켜지지 않은 약속 때문에 속상했다. 심지어는 애초에 내 것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을 빼앗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습지 않은가. 애초에 내 것이 아닌 것을 어떻게 빼앗길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랬다. 마음에 병이 들면, 이런저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합쳐지면 이토록 우스운 방향으로도 의식이 흘러갈 수 있는 것이다. 잘못 한 이 없는 이를 탓하느라,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리워하느라 약간은 정신 분열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여전히 내 마음은 살아나지 않았다. 하지만 새해가 다가올수록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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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필요 이상으로 정확히 알고 있다. 그것을 당장 쟁취하거나 실현시킬 수 없으면 극도의 결핍 상태에 이른다. 늘 "Hell, yes!"라고 대답할 수 있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인생은 늘 이렇게 어려울 것이다.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테니까. 나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것들도 분명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원해. "빌어먹게 좋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 무언가, 느끼고 싶어.
오늘은 종일 바바라의 말 "Hell, yes!"가 자꾸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