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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Jan 26. 2019

이 사랑이 변한 건 아닐까?

소멸되는 것들

오래도록 곁에 머물렀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던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과 같은 것들.


어떤 사람을 만나 시간을 보내고

헤어질 즈음, 오늘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고 생각된다면

그 만남은 정말 소중한 사람과 함께 였을 것이다.


혹은 소중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즐겁거나 공감이 되는 만남이었겠지.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떤 만남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상황, 혹은 사람이.


아직 헤어질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편에서 갑작스레 준비가 끝나 이별을 고한다면

나의 남아있는 마음은 어디에 둬야 할까?


아직 마음이 남아있다고,

그만큼의 시간만 함께 해달라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해서

쉽사리 쿨한 척하곤 한다.


얼마 전 연애상담 의뢰가 있었다.


"남자 친구가 저에게 간절함이 없어요"


나는 그녀에게 어떤 면에서 간절함이 없다고 느꼈는지를 물었다.


"사귀기 전부터 저는 말했어요. 나는 담배 피우는 남자 싫어 미안해. 그러자 그는 오빠 어차피 담배 끊으려는 중이었어 보건소에서 금연지도도 받고 있고 헬스도 시작하려고. 약속할게 너에게 담배냄새 안 나게 천천히 끊을게.

여자 마음이 또 그렇잖아요. 누군가 나 하나만을 위해 노력한다는데 거기에 감동받지 않을 여자가 몇이나 있겠어요. 그때부터 괜히 그가 좋은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그전엔 이성적인 호감이 있지는 않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더라고요. 이 남자, 자상하다 싶었죠."


그녀는 그렇게 그와 사귀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에게선 담배냄새가 나지 않았고, 그녀는 그렇게 그를 온전히 신뢰하게 되었다.


"근데 어느 날부터 담배냄새가 너무 심한 거예요. 심지어 머리카락, 손에서도 냄새가 나니까 방금 전까지도 피웠구나 싶어서 서운한 거예요. 초반엔 날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으면서 이젠 내가 편해진 건지, 아무렇지 않아 진 건지 너무도 무심해져 버린 그의 태도에 서러웠죠. 나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정말 밤하늘의 별이라도 따줄 것처럼 노력하던 그는 온데간데없었어요. 제가 오빠 담배 폈어? 물어보면 요즘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데. 이렇게 말하고 말더라고요. 이 남자, 저한테 간절한 것 맞나요?"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상황이든 모든 것에는 공통된 본성이 하나 있다.

'관성'이라는 것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본성이 나오는 원리이다.

어떤 사람이든, 사물이든, 동물이든 그 어떤 것이든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의 원래 삶을 억제하며 오랜 시간을 견뎌내지는 못한다.

나트륨을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나트륨이 가득한 음식을 많이 먹어온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도 식습관을 고치기 힘들다.


다만, 암이나 당뇨에 걸려 식습관을 조절하며 먹고 있다면 그 사람은 식습관을 "고친 것"이 아니라

단지 "참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나트륨에 관한 희망 욕구가 올라올 때마다 삶에 대한 간절함을 상기하며,

겨우겨우 억제할 것이다.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다.

탱탱볼을 바닥에 던지면 던졌던 힘의 세기만큼 땅 위로 튀어 오르기 마련이다.

용수철도, 스프링도 그러하며, 머리카락도 아침과 밤에 빠진 만큼 다시 자라곤 한다.


나는 사람에게 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사람이 쉽게 변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충격적인 계기가 있으면 변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담배나 게임과 같은 중독성 있는 것에 깊이 빠졌던 사람들은 쉽게 헤어 나오기 어렵다.

물론 주변사람들이 변하겠다고 하면 믿고 용기를 주되, 그것에 너무 자신을 올인하지는 말자.


그래서 그 남자분도 처음엔 그녀를 잡고 싶은 간절함에

담배에 대한 욕구를 겨우 억누르며 인내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에 대한 사랑이 미칠 듯이, 전투적으로, 반드시 그녀를 잡아야겠어! 의 형태가 아니라 잔잔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본인의 주변 상황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데 일이나 공부의 고단함을 이겨내고자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단정 짓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것이 늘 전투적으로 쟁취하고자 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이 그런 것만 있다면, 부부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늘 스펙터클하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멸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사랑에 있어서의 승부욕, 쟁취와 같은 열정이 아닐까.


처음 만났을 땐 어떻게든 말이라도 해보고 싶었고,

그 이후엔 밥이라도 먹어보고 싶었고,

영화라도,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간절함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랑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전처럼 미칠 듯 노력하지 않아도 언제나 당연하게 내 곁을 지켜주겠지, 싶다.

이런 사랑은 편안하다.

언제 옆에 있어도 편안한 사람.


사랑이 편안해지기 시작할 무렵, 사람들은 과거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어 진다.

관성에 의해 돌아가는 나의 예전 모습도 마찬가지로 사랑해줬으면 하는 마음,

지금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마음이 존재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남자가 여자를 얻기 위한 간절함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왜냐 애초 그녀가 사귀는 조건으로 제시한 것이 금연이었기 때문이고 실제로 그는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순간 변한 모습에 그녀는 사랑이 변한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사랑이 변한 게 아니다.

간절함이 변한 거다.

당신과 함께 하는 시간이 싫어진 것이 아니다.

전처럼 쟁취하고자 하는 마음이 줄어든 것뿐이다.

당신이 편해진 것이다.

당신도 삶에 있어서 늘 공기가 존재했기에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과정이 편하지 않은가?

굳이 의식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숨은 쉬어진다.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늘 점점 편한 방식을 추구한다.

낯선 길도 시간이 지나면 지름길이 생기기 마련이며,

신입 때는 힘들었던 업무도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진다.


그와 당신이 오랜 시간 사랑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변한 그를 탓하며 서운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운한 감정을 먼저 표현하기보다는

차분하게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리고 그에게 요즘 일은 어떤지 많이 힘든지 물어봐주자.

그는 분명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사랑만큼 다시 사랑을 주고 싶어 질 것이다.


사랑에 있어서 요구하고, 서운해하는 감정보다

그를 이해해줄 수 있다면.

그의 상황을 먼저 바라볼 수 있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간절한 관계가 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연애에 있어서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려 하지 말라.

변화시키려 하면 안 된다.

왜냐, 그럴수록 본인만 힘들기 때문이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싫으면 그 사람이 금연하게 만들거나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비흡연자를 만나면 된다.


'그' 사람이 좋아서 떠날 수 없다면,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받아들이자.

그와 헤어지고 그의 행동을 닮지 않은 다른 사람과 사랑하느니

차라리 그의 행동을 사랑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말이다.


본인 스스로 생각해봤으면 한다.


당신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습관을 몇 번이나 바꿔봤는지.

바꿔봤다면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알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간절함이 덜어진다.

그리고 당신과 나 사이의 소중한 시간도 지나간다.

소중한 시간들은 늘 과거이다.

지금 행복한 시간도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과거가 되었다 해서 그때의 시간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시간을 살기 위해 안달복달했던 간절함만 덜어졌을 뿐.


무언가를 얻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을 생각해보자.


1분 1초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던 시간.

그 시간이 지금은 과거가 되었다.

지금은 그때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때의 노력으로 지금은 이미 얻었기 때문이다.

혹은 아직 얻지 못해 진행 중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현재 행동에 대한 간절함이지 과거 행동에 대한 간절함이 아니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흩어진다.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그대로이다.


나는 늘 편한 사랑이 좋다.

당신과 내가 자연스럽게 얽히는,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당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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