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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Dec 04. 2019

사랑이었다, 사랑이 아니었다

자기야 그건 사랑이 아니야

사랑이 뭐야?


a가 물었고, b가 답했다.


나의 억지를 받아줄 수 있는 거.

뭐랄까?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야.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람이 정말 좋아서 수긍이 된다면 사랑이 아닐까?


b의 말은 심오했다.

수긍, 이해, 상황, 논리, 이성.


a가 되물었다.

네가 옷에 실례를 했어.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야 그럴 수도 있지 난 자기를 이해해.

이런 걸 말하는 거야?


b가 덧붙였다.

그렇게 극단적인 사례를 말한 건 아닌데.

이럴 테면 이런 거지.

너 이태리어로 '빼쉐'가 무슨 뜻인지 알아?

생선이라는 의미래, 근데 요리로서 '빼쉐'의 의미는 얼큰한 국물의 토마토 파스타란 말이야.

이 빼쉐를 잘못하면, 너무 짬뽕 같아.

적당히 퓨전이 되어야 하거든.

'적당히'가 안 되면 이태리 음식이 아닌 중식이 되어버리는 거지.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는 죽어도 정통 빼쉐를 먹겠대.

그래서 너는 열심히 찾아봤어.

빼쉐 맛집을.

근데 가는 곳곳마다 그 사람이 여기는 정통이 아니라는 거야.

얼핏 짬뽕 맛이 너무 강하다거나 아니면 좀 더 매콤했으면 하는데 너무 토마토 맛만 난다거나.

피곤하지.

한 가지 음식에만 집착하는 거야.

중요한 건 너는 파스타에 관심도 없는데 말이지.

비슷한 상황이었어 내가.

뼈찜을 먹으러 가자더니 자기는 고추장을 안 넣고 오로지 고춧가루로만 요리한 뼈찜 식당에 가고 싶다는 거야.

친구였으면 다시는 연락 안 했을지도 몰라.

난 음식 먹을 때 피곤한 건 딱 질색이거든.

근데 난 그녀를 사랑했어.

전국의 뼈찜 맛집 50군데를 검색했어.

그리고 일일이 전화했지.

딱 두 군데에서 고추장을 전혀 안 쓰고 고춧가루랑 육수, 기타 양념으로만 조리한다는 거야.

한 곳은  2시간 거리, 나머지 한 곳은 2시간 반이었어.

난 바로 그날 그녀에게 전화했지.

"네가 시간 되는 날짜만 말해주면 바로 예약할게."


그녀와 밥 한 끼를 할 수 있어서, 그녀가 좋아서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붕 뜨더라.


사랑이구나, 생각했어.

그런 말 있잖아.

별도 따줄게.

난 정말 그녈 위해서라면 별도 따줄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만큼, 그녀가 기뻐할 모습 한번 보기 위해서, 그 잠깐을 위해 살아갔어.


a가 말했다.


나는 생각이 조금 달라.

원하는 것을 해주는 건 좋아하는 거야.

사랑까지 아니어도, 좋아한다면 충분히 원하는 것을 해줄 수도 있어.

근데 사랑한다면, 나는 하고 싶지만 상대가 원하지 않을 경우에 "감수"할 수 있지.


a는 사랑이 '감내'라고 했고

b는 '노력'과 '열정'을 칭했다.


공통점은 오로지 상대만을 위한다는 점.

차이점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참느냐, 딱히 원치 않는 것을 하느냐.


어찌 되었든 나의 그대로가 아닌 가공한다는 것이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c가 말했다.

비싼 밥을 사줬어.

근데 나에게 거짓말을 해.

그럼 사랑이야?

자기 월급의 절반이나 되는 가격의 선물을 줬어.

근데 가끔 욕을 해.

그럼 사랑이야?

내가 먹고 싶어 하던 음식을 요리해줬어.

근데 만나면 별 말도 안 하고 혼자 핸드폰 게임만 해.

사랑일까?


자기야, 사랑은 뭔가를 해주는 게 아니야.

아무것도 해주지 않더라도 그 마음이 어딜 향하고 있는지를 봐야 해.

나에게 아무리 비싼 밥을 사주고, 내가 원하는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들

한 두 번 상처를 주면 그건 절대 사랑이 아니야.


자기야, 사랑은 자기가 하고 싶은 행동이 있어도 상대에게 상처가 되면 하지 않는 거야.

습관이 된 행동도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끊을 수 있는 게 사랑이야.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앞에선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만, 뒤에선 너의 이야기를 쉽게 하고 다닌다면 그게 사랑일까?


비록 네가 원하는 것을 해줄 능력과 상황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절대 너에게 상처 주지 않고 늘 너의 뒤에서 너를 지켜준다면.

네가 힘들 때 어깨를 빌려주며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라면, 그가 사랑이야.


기억해.

사랑은 절대 눈으로 분별할 수 없어.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야.

눈에 보이는 선물을 한다고 해서 그가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건 모순이야.

진짜 사랑은 드러나지 않아.

느껴지지, 은은하게.


생각해보니 c의 말이 맞았다.

우리가 사랑에 상처 받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내가 원하는 선물을 사주지 않았을 때가 아니라, 대부분은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상대가 했을 때니까.

나에게 비싼 가방을 사주지 않는다고 해서 상처 받기보다는

나를 감정적으로 힘들게 해서, 약속을 어겨서와 같은 것들 때문이다.


그가, 혹은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지표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들떠서 판단하기보다는

한걸음 물러서서 천천히 둘러봐야 비로소 볼 수 있다.


어쩌면 그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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