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직장인이 돼야 한다면.
오랜만에 나를 소개하는 글을 쓴다. 성별과 나이, 집 주소와 신상을 쭈욱 적어 내려 간다. 열심히 하겠다는 말 대신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말을 적는다. 오늘도 어제처럼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말을 빼먹은 것 같아 어디에 넣어야 제일 말랑말랑할지 한참을 고민한다. 재취업을 하려는 나의 마음가짐은 그렇다. 솔직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다시 돌아온 탕아는 여전히 탕아이다. 집을 뛰쳐나간 자는 언제도 다시 뛰쳐나갈 수 있다. 퇴사라는 단호한 선택을 언제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득 담은 이력서를 읽어본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내도 백수의 일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게으르고 고민은 많지만 딱히 불안하거나 끙끙거리진 않는다. 가장 큰 걸림돌은 나는 서른 중반을 넘어선 여자라는 것이다. 업계에 널리고 널린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이름만 들어도 아는 메이저급 회사를 나온 것도 내게는 거추장스러운 훈장이다. 대부분의 작은 회사에서 원하는 건 고만고만하게 말 잘 듣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안다. 적당히 어울릴 줄도 알고 싫어도 좋은 척하는 동그란 돌. 내 이력서를 쭈욱 보면 모난 구석이 내 눈에도 보인다. 예를 들어 일과 삶의 균형감각이라든지 과하게 많은 외도(업계와 상관없는 경력)의 흔적 같은 거 말이다.
행복한 운명은 생각지 못한 우연에서 시작된다. 피똥사며 노력해서 만든 운명 일수록 기대감만큼 큰 절망이 온다. 자신의 삶은 방치한 채 운명이라 믿고 실체 없는 회사를 위해 악을 쓰고 버틴 자에게 남는 것은 자괴감뿐이다.(내가 이러려고 내 청춘을 다 바쳤나 뭐 이런 느낌말이다.) 나는 좋은 직장이라는 운명을 성취하고자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가 어떤지 모른채 거침없이 열정과 신념을 포장하던 풋내기가 아니다. 직장, 일 안에서 내가 얼마나 나다울 수 있는지 고민할 것이다. 그래, 그런 의미에서 고른 문장이 '함께 성장하고 싶다'이다. 회사가 커가는 동안 나의 삶이 쪼그라들고 싶지 않다.
지난 회사와 나를 비춰 본다. 회사라는 너란 녀석과 나는 어땠나. 너만 연매출이 오르고 나는 물가 인상률도 반영되지 못했다. 너만 세계 십 대 기업이 되겠다고 큰소리치는 동안 나는 그저 백 명 중에 한 명의 실장이 되었을 뿐이다. 그런 나는 '고용, 승진'을 무기로 감사할 줄 모르는 젊은 세대로 치부되곤 했다. 성장이 단순히 월급과 지위라면 그럭저럭 밀당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십 대 기업이라는 포부 넘치는 회사에 있었지 않은가. 누락 한번 없이 회망퇴직이 가능한 소위 실장님이 돼보지 않았던가.
나는 성장했을까? 대학을 갓 졸업하고 할 줄 아는 거라곤 말도 안 되는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화려하기 그지없는 헛소리를 만들어내던 풋내기가 몇 백장이 되는 도면을 검수하고 몇 군데의 협력업체를 조율하며 프로젝트를 이끌어내는 정도가 되었다. 그 땐 나름 뿌듯했다. 어딘가에 끼워질 부품으로써의 역량은 일취월장이라 말할 수 있겠다.
과연 직장인의 성장은 무엇일까.
건축가로 이름을 날리고 싶은 마음일까? 신문과 잡지에 디자인이니 미학이 어쩌고 하며 유명해지는 걸까.
서울에서 살며 중형급 아파트를 빚을 내서 사고 퇴직할 때쯤 그래도 부동산 소유주가 되는 걸까.
내 자식들이 어디 가서 꿀리지 않고 원하는 꿈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재력과 지위가 있는 부모가 되는 걸까.
나는 성장하고 싶다. 건축가로서가 아니라 전문직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언젠가는 될지도 모르는 한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그냥 내가 그린 인생에서 그 나이에 맞는 연륜과 지혜를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하루에 정해진 시간만큼 일하고 남은 시간 동안 천천히 나이 먹고 싶다. 야박하지 않고 성급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한없이 관용적이고 여유로운 어른이 되고 싶다. 재력과 능력에 기대어 빛나지 않아도 되는 일상이 행복한 중년을 맞이하고 싶다.
꼭 연봉과 업무시간이 다가 아니다. 옳은 일을 할 필요도 없다. 주어진 일이 있고 그것을 해내는 내가 있으면 된다. 출근하며 아침 해를 보고 점심 먹으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퇴근하며 오늘의 바람을 느낄 수 있으면 된다. 원대한 꿈과 거창한 야망은 즐거운 취미로 이어가면 된다.
그러니까 회사는 그냥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 하루를 또렷이 기억할 수 있게만 하면 되는 것이다. 연봉과 업무시간은 상식적이기만 된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괴팍하든 소심하든 그저 보통의 범주이면 된다. 나 역시 훌륭한 인품이라 말할 수 있진 않은 것 같으니. 일도 마찬가지다. 대단하지 않은 프로젝트였으면 좋겠다.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일반인들이 누가 지었는지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일들, 적당히 욕심내는 건축주와 얍쌉하게 돈 벌려는 시공사, 어떻게든 일을 줄이고 설계사를 부려먹는 공무원의 비빔 정도면 된다.
한껏 부풀려진 꿈을 안고 업계에 들어섰던 나는 더 이상 그 환상 속에 살고 싶지 않다. 고급 주택과 칠성급 호텔, 일류기업의 오피스, 상위 1%를 위한 별장을 디자인하며 해외 유명 건축가의 최신작을 여기저기 짜깁기하고 싶지 않다. 뉴스에 오르락 내리는 큰 프로젝트는 더더욱 그렇다. 천재란 발견되는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나는 반짝이는 천재가 되긴 글렀다. 유명한 천재가 되기 보다 백수신랑이랑 아무도 아닌 사람으로 늙어죽을 때까지 제주도에서 바이크타면서 노닥거리고 싶다. 이렇게 나는 소위 말하는 좋은 회사, 반짝이는 사람들이 높은 위치로 올라가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있는 세상으로 나갈 동력을 잃었다.
아주 작고 치졸한 문제로 투닥거릴지라도 아무것도 아닌 그런 회사.
아주 정확하게 일하고 요구하는게 까다롭지만 그럭저럭 빵구안내고 적당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
그래서 내치기엔 아쉽고 데리고 있기엔 골치 아프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 그게 지금 나의 워너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