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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유인 Jun 25. 2021

동시대 문화비평 단상 (1) 엔하이픈(ENHYPEN)

 <BORDRE :  DAY ONE> - '괴물의 아이'

피가 붉다고 학습한 아이는 피가 붉다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피가 하얗다고 학습한 아이는 피가 하얗다고 생각한다.

피를 체험하고도 그것이 붉다고 생각하지 않는 아이는 천재이거나 혹은 괴물이다.




엔하이픈의 최근 음악들은 '경계'라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경계'라는 정체성은 그 자체로 어떤 영역에 발붙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종국적으로 모호하다.

그러므로 '경계' 그 자체가 정체성이 되기 위해서는 대상이 되는 존재가 어떠한 영역의 경계선에 서있는지를 밝히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들의 데뷔곡이자 첫 번째 미니앨범 <BORDER : DAY ONE>에서 7명의 소년들은 '나의 붉은 눈빛'과 '내 하얀 송곳니'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다. 매일 아침 나를 비추는 태양의 빛은 나를 불태우고 내 눈을 멀게 하는 존재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몸에 새겨지는 생경한 감각은 내가 누군가를 끊임없이 되묻게 한다.


태양의 빛과 씨름하는 과정을 통해서 '나'는 결국 '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소년들은 각자의 고민을 안고 있다.


쇠사슬에 묶여 나아가지 못하는 자아, 멈추지 않는 춤을 추는 자아, 집단 속에 있으나 그 속에서 온전히 섞이지 못한 자아, 먹지 못하는 자아, 손이 불타는 자아 등.


소년들은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고민하고 헤맨다.


"수많은 stars 수많은 달/질문의 숲속을 헤매던 나/어둠 속의 저 빛을 따라왔어/가는 선 너머의 날 부르는 너/널 부르는 나"


여기서 '날 부르는 너', 그리고 '널 부르는 나'는 결국 동일한 인물일 수 밖에 없다.

태양을 피해 도망쳐온 질문의 숲 속에서 소년은 왜 자신이 남들과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는지를 깨닫는다. 태양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검은 밤의 달 아래에서 자신의 붉은 눈과 하얀 송곳니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의 또 다른 자아와 마주하면서 자신을 괴롭히던 질문의 실마리를 찾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질문이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면서 오히려 고민은 더욱 깊어질 뿐이다.


소년은 '운명의 화살 비 속에서' '내 안의 경계선'을 마주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인가? 그렇게 자신의 뒤에는 '수천 개의 의심'과 '수만 개의 불신'이 쌓인다.


그래서 결국 이 서사 속 주인공인 '소년'은 '괴물의 (인간) 아이'다. 괴물이라는 태생을 갖고 있지만, 그는 인간의 아이로 자랐기에, 인간의 언어와 질서만을 학습했다. 결국 소년이 마주한 질문은 바로 이 '형용할 수 없음'으로 귀결된다.


인간의 언어로 "피는 붉다", 그리고 "송곳니는 하얗다."

그러나 괴물에게는 내 송곳니를 타고서 흐르는 피의 생생한 감각을 붉다 혹은 하얗다고 재단할 수 없다. 그건 오직 인간의 언어 질서 속에 복속되어, '형용할 수 있음'으로 재단될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괴물의 아이는 결국 그러한 언어에 귀속되지 않는 '바깥'을 상징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이 머무는 공간은 바로 '인간'이다. 7명의 소년들은 보육시설과도 같은 공간에서 숙식을 함께한다. 중간중간 필름이 넘어가듯이 삽입되는 장면들은 주로 낮에 이루어지는 '인간'의 삶을 수행하여 보여준다. 그러나 밤이 되면 소년들은 각기 다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밤은 소년들에게 안식처가 아닌, '분열'의 장소이다.


이러한 분열에서 한 단계 벗어나는 방법이 바로 '하늘'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다.


"주어짐과 쟁취함 사이/증명의 기로 위 남겨진 나/저 하늘을 우린 기다려왔어/가는 선 너머의 날 부르는 너/널 부르는 나"


이들에게 놓은 증명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 그 자체를 밝혀내는 것이다. 자신들의 기원은 무엇이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질문이 그들 앞을 가로막는다. 인간은 인간을 벗어날 수 없고, 괴물은 괴물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괴물의 아이'는 다르다. 그들은 인간 안에 있으나, 바깥을 상상할 수 있고, 괴물이지만 인간의 언어와 행동을 학습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계로 나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것은 '왕관'을 쟁취하기 위한 작업이서도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정원은 MV의 시작에서 코피를 흘리며 폐허가 된 건물 앞에 서있다. 그리고 중반을 넘어서 이윽고 그 코피가 멎으면서 다른 소년들이 모여든다.


밤의 아이는 낮을 살아갈 수 없다. 밤에 태어난 괴물에게 태양이 내리쬐는 낮은 피해야할 폭력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피를 흘리면서도 소년들은 인간의 장소를 벗어나서 낮으로 나아간다. 그들에게 하늘이란 폐쇄된 공간의 바깥을 상상하는 것, 그리하여 태양빛에 타버릴지라도 태양을 직접 마주하고 서있는 것이다.  


"(To you)

난 이제 세상을 뒤집어

(To)

하늘에 내 발을 내디뎌

(Me)

Given or taken oh"


모든 '쟁취함'에는 댓가가 따른다. 그리고 그 댓가는 많은 경우 "주어짐"의 안온함을 버리고 나의 고통과 마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년들에 하늘에 발을 내딛는 것은 주어진 것과 쟁취한 것을 '상호교환'하는 일이다. 괴물로서는 고통스러운 운명의 화살 비를 맞고, 면류관과 같은 왕관에서는 피가 흐르지만, 나아가리라 결심한 이상, 그것은 얻는 것의 댓가에 불과하다. 그래서 소년은 폐허가 된 인간의 영역에 눈에 보이지 않는 운명의 화살을 쏘면서 마침내 흑백으로만 된 옷을 벗고 다양한 개성을 지닌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제 7명의 소년 각자는 '인간' 혹은 '괴물'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없는, '경계'에 선 자들이다. 괴물이면서도 인간이고, 인간이면서도 괴물인 소년들은 낮과 밤을 통해 폐허가 된 공터에서 "신세계에 닿을 때까지, 두 세계를 연결"한다.


괴물과 인간은 서로 화해할 수 없다. 그것은 태생적인 한계이며, 존재론적인 구별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경계' 그 자체인 자들은 그 둘을 연결할 수 있다. 아이에게 '피'는 붉은 것이면서도 붉은 것이 아니다. 이 '형용할 수 있음'은 '형용할 수 없는' 것으로 현현한다.


고바야시 히데오는 바다를 파랗다라는 인간의 언어를 습득하고도 바다가 파랗다고 생각하지 않는 아이를 괴물 혹은 천재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엔하이픈은 '연대'와 '연결'을 초점에 맞추고 있다. 세상에는 연대하여야 할 다양한 군집이 있다. 이들이 먼저 선택한 것은 '자아'의 연대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자기 안에 있는 두 개의 자아-괴물과 (인간) 아이-는 결국 연대하고 협력하여 앞으로 나아가야할 대상이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연대하여 연결짓는 '기이'를 통해 엔하이픈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확립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개념을 쌓고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경계'라는 정체성을 통해서 무엇인가끼리의 '연대'를 상상하게 하는 작업이 계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연대는 어느 한 진영에 있다면 상상하기 쉽지 않은 작업이다. 연대는 경계선에 서서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고 합의하면서 이루어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뒤에 나온 <BORDER: CARNIVAL>에서는 곧게 나아가지 못하고 삐걱거리는 모습으로 나온다. 물론 그러한 흔들림마저도 '경계'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고보니 두 앨범의 표제도 바로 'BORDER'이지 않는가. 경계에서의 첫날과 축제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이 괴물의 아이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더욱 지면을 할애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마지막 장면에서 정원은 화면을 응시하다가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끝난다. 위협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즐거워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정체성이 혼재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장면으로 읽히는데, 앞으로 '괴물의 아이'가 어떻게 행동하게 될지는 지켜보아야 할 문제로 생각된다.  


모든 세상 일에는 댓가가 따른다. 그것이 과연 피로 끝날지, 왕관으로 끝날지는 당사자의 몫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소년들은 오늘도 "난 너에게 걸어가지, 신세계에 닿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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