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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쎈쓰 ssence Sep 26. 2016

우리가 사는 세계, '이퀄스'

이성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피어나는 감정

처음 '이퀄스'를 보려고 했을 때, 물론 '어바웃 타임' 제작진이라는 말에 현혹돼서 고르긴 했어도  그렇게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감독이 같지 않은 이상 소문난 영화 제작진의 작품이라는 말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이미 알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스텝 한 명만 같아도 동일한 제작진이라고 홍보한다.)  처음 영화 제목을 영어가 아닌 그냥 한국어로 '이퀄스'라고 들었을 때, 속으로 갸우뚱거렸다. 개인적으로 명사보다는 동사로 자주 나오는 단어 'equal'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퀄스(EQUALS): 동등한 사람[것]


영화는 텅 빈 스케치북과 같은 상태에서 시작한다. 모든 것이 마냥 하얗고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운 세상. 그 속에서 충실한 일원으로서 삶을 잘 살아가고 있었던 주인공 사일러스가 모두가 무서워하는 S.O.S. 신드롬의 초기 증상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기서 S.O.S. 는 구조요청이 아니다. Switched On Syndrome. 즉, 사랑과 분노 외로움 등 사람이 가지는 감정이 생기는 것을 의미하고 이를 끔찍한 병으로 치부한다. 결국, 주인공 사일러스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사랑은 범죄고, 감정은 질병이다. 하지만 그 사실보다 중요한 건 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순백의 사일러스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색감을 더해준 이는 따로 있었다. 니아는 직장 동료이자 사일러스보다 더 일찍 S.O.S. 증상을 지니고 있었으나 사일러스와는 다르게 이를 모든 이들로부터 숨긴 채 살아왔다. (이를 영화 속에서 '하이더(Hider)'라고 일컫는다.) 그런 그녀를 알아본 건 사일러스다. 사랑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면서 동시에 금지된 행동을 한다는 사실에 그들은 두려워한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감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밀실에 남자와 여자의 실루엣을 서늘한 색깔들과 함께 연출하는데 이는 사랑을 하면 할수록  서늘해진다. 어쩌면 감정과  다르게 이성은 차가워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 장면을 가장 좋아한 이유는 배경 색과 또렷하게 대비되는 그들의 그림자를 통해서 그들이 느끼는 미세한 떨림까지 고스란히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밀하게 연애를 하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은 깊어져만 간다. 그런 와중에 직장 상사가 둘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우린 감기도 암도 고쳐냈으니
감정도 고칠 수 있을 거야


이에 사일러스는 니아에게 이별을 고하고 다른 직장으로 떠나게 된다. 자신의 사랑 때문에 여자가 다칠까 봐 염려되는 마음에서 그는 그녀를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눈 앞에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야만 하는 남자와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여자는 오히려 서로를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각자 물리적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와중에도 같이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커져만 가고 결국 둘은 은밀하게 만남을 유지한다. 여기서 다시 만났을 때 감독은 차가운 색에서 다시 따뜻한 색으로 색깔을 입히는데 이는 오로지 감정에만 충실하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은 불안과 공포로 사랑을 억누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불법적인 만남을 이어가는 둘에게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는 S.O.S. 신드롬을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이 생긴 것이다. 그들은 바이러스를 치료할지 아니면 감정을 유지할지에 대해 일말의 고민도 없이 감정을 택한다. 그런 그들에게 지금 사는 세계는 살얼음판이기에 덴(DEN)이라는 신세계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와 그녀의 만남이 엇갈리게 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그녀가 병원에서 나올 수 있게 도와준 무리는 모두 백신을 맞게 되고, 이에 불안해하던 사일러스는 니아가 죽었다는 소식에 백신을 받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니아는 오로지 사일러스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들이 맞이한 운명을 해피엔딩으로 간주해야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감정이 사라진 사일러스에게는 의무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같이 덴으로 떠날지라도 오래 지나지 않아서 깨지게 될 환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꼈던 감정을 기억해.


시각적으로 영화가 뻤던 것은 있었으나 스토리상 몇몇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약간 영화 '더랍스터'가 연상되기도 하면서 남녀가 엇갈렸을  이야기 전개상 긴장감을 느끼기보다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생각나서 오히려 감상하는데 방해 요소가 되었다. 단지 전에도 언급했던 영화 속 색감이 우리가 늘 생각해 오던 느낌이 아니라서 신선했다.


영화 '이퀄스' 티저 영상

영화를 보는 내내 어쩌면 우리 모두 지금 '이퀄스'와 유사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3포(연애. 결혼. 출산)에서 5포(내 집 마련. 인간관계)를 넘어 7포(꿈. 희망)를 바라보는 시대에서 감정이란 배제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감정이 사라진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동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일의 효율성은 더 높을 수 있어도 결국 우린 인간이기에 감정이란 녀석이 다시금 생길 것이다. 그것이 참된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이퀄스'라는 뜻과 아이러니하게도 상반된다. 각자의 개성이 우리를 모두 동일하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퀄스' 속 남녀 주인공으로 나온, 엑스맨에서 비스트 역을 맡았던 니콜라스 홀트와 트와일라잇 여주인공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기존에 그들이 했던 연기 스타일과는 좀 다르다. 물론 남녀 주인공 모두가 잘생기게 나와서 성별을 구별할 수 없었지만 이 또한 감독이 노린 노림수가 아닌가 싶다. 또한, 영화 속에서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나오는 한국 배우 박유환씨와 안내원 목소리로 수현씨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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