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다녀온 뒤 가만히 부엌 한편에 섰다. 힘겹고 고단하다.
아이는 난지 10개월 16일이 되던 날, 처음으로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말이 수술이지 시술에 가깝지만, 가만히 있기가 불가한지라 전신 마취가 꼭 필요하다. 덕분에 밤새 이어진 금식으로 제때 분유를 손에 넣지 못한 녀석은 집을 나서는 길부터 이미 울음이 터졌다. 젖은 목소리에 원망이 가득. 영문도 모른 채 배고픔을 견디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구나. 아직은 천지 분간이 어려운 어린 생명. 아이는 병원 입구에서 이마로 갖다 대던 체온계에도 입을 내밀어 구강기 욕구를 마음껏 채우려 한다. 엄마는 그 모습이 그리 측은했다.
마침 비어있던 소아용 수술 대기실을 일찍이 사용한다. 접수실 중앙에서 쩌렁쩌렁 울어대는 통에 어쩔 수 없었다. 유모차를 탈출한 해방감에 신이 난 아이는, 처음 마주한 환자복과 병실이 신기한지 침대 난간을 붙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댄다. 곧 닥칠 일을 예상이나 할까. 엄마가 자신을 어디로 데려왔는지 알기나 할까. 눈만 마주치면 환하게 웃어주는 아이의 까만 눈동자에 미안함이 앞섰다. 바늘을 꽂기 위해 세분의 간호사가 다녀가셨고, 양쪽 팔과 다리를 돌아가며 동여매자 녀석은 이제야 겁을 먹고 비명을 질렀다. 어려 혈관 찾기가 힘이 든단다. 아이를 침대에 놓지 못하고 그대로 안아 들었다.
수술실로 향하는 휠체어는 엄마가 대신 탄다. 품에 아이를 안은 채. 의료진이 번갈아 가며 동의서 내용을 설명했다.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태블릿에 밑줄을 그어대는 형광펜에 눈이 시렸다. 대기하는 사이, 잠든 아이 곁으로 시선이 모인다. 소아과가 아니라 이리 어린 환자는 오랜만인가. 품 안의 자식에게 듣기 좋은 말이 쏟아지니 잠시 마음에 바람이 인다. 홀로 대기실로 넘어와 수술 시작과 끝을 알리는 모니터를 바라본다. 큰 병원은 뭐든 잘 되어 있구나. 휴대 전화도 외투 주머니에 넣어둔 채 가만히 앉았다. 오기 전까지 때 모르고 눈물이 쏟아지더니 성능 좋은 난방기 덕인가, 눈물은 말라 맺힐 생각도 없다.
수술을 끝낸 담당의에게 경과를 듣고, 곧 회복실로 아이를 찾아간다. 수많은 어른 사이에 누워있는 작은 아이. 깨어나 정신없이 몸을 뒤집으며 소리를 지른다. 난감해 보이는 의료진도 함께. 얼른 침대로 올라 아이를 안았다. 작은 몸에 이리저리 붙여둔 선들을 피해가며 가슴을 토닥인다. 아이는 다시 잠이 들었고, 물끄러미 감은 눈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이 당한 일에 꽤 억울했겠지. 생면부지 사이에서 얼마나 불안했을까. 엄마를 찾았을까? 조심히 작은 손과 발을 어루만진다. 시끄러워진 녀석의 속이 차분히 잦아들길 바라며 진심으로 다독인다. 꽤 시간이 지난 뒤, 아이의 발목에서 뽑아낸 바늘을 보고서야 비로소 속이 시원해졌다.
덩달아 비웠던 뱃속이 허하다. 현관 앞, 쌓인 택배 상자를 그대로 두고 집으로 들어간다. 녀석은 일찍 잠이 들었다. 퇴근한 남편도 곁에 누워 함께 단잠에 빠졌다. 어느새 집안으로 들여진 상자들. 개중 비눗방울이 눈에 띈다. 아픈 녀석을 위해 이번만큼은 망설이지 않고 물건을 샀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구나. 포장을 뜯어 개수대 앞으로 가, ‘후-’ 동그랗게 입술을 모으고 바람을 분다. 퐁퐁 떠다니는 작은 방울들. 아이가 보면 참으로 좋아할 테지. 조금 더 숨을 모아 방울을 분다. 종일 내쉬고 싶던 한숨을 이제야 마음껏 뿜는다. 알지 못할지라도 아이 앞에서만큼은 울지 않겠다 다짐했던 마음을 오색 빛 방울로 토해낸다.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한 비눗방울들이 공중에서 ‘팡’하고 터져버린다. 숨이 트인다. 부엌 한쪽에 난 작은 창을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에게 말한다. 오늘, 참 잘 견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