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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May 31. 2022

양파를 까면서
노동시간과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서촌칼럼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장바구니 키트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트 가면 바구니에 물건을 몇 개만 담아도 손으로 들기 늘 묵직하다. 바퀴 달린 장바구니 키트를 살까, 망설이다 말았다. 모든 변화는 극적이지 않다. 장바구니 키트는 이제 필요없어졌다. 마트에서 배달 주문을 하거나 급할 때는 새벽배송을 이용한다. 택배노동과 새벽배송에 대해 희미한 미안함이 쌀뜨물처럼 가라앉아 있는데, 늘상 그렇듯 편의성이 정치적 올바름 같은 걸 앞서버린다. 

몇 주째 장을 못 봤더니 기본 야채마저 동이 났다. 감자, 양파, 호박 같은 것들이. 장보러 나서기엔 컨디션이 신통치 않아 〇〇〇앱을 열어 장을 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주문한 물품이 종이박스에 가지런히 담겨왔다. 양파 한 자루를 꺼내 들다가 “어이쿠, 작은 망이 아니고 큰 망이네,”혼잣말을 했다. 두 식구 살림에는 작은 망의 양파도 종종 썩고 싹이 나기 일쑤인데…. 어쨌든 양파 자루를 야채 보관하는 데 얌전히 놓아두었다.      


또 한두 주가 지났다. ‘아, 양파…. 썩기 전에 껍질 벗겨서 김치냉장고에 넣어야 하는데’하면서도 주말과 휴일마다 일이 많아 양파 다듬을 짬을 못 냈다. 월요일 아침, 야채볶음을 하려고 양파를 꺼내려다 안 되겠다 싶어 자루째 개수대로 옮겼다. 그냥 뒀다간 모조리 썩어 무를 판이다. 큰 망이라고 해봤자 열두어 개 남짓의 양파를 다듬기 시작한다. 껍질을 벗기고, 무르기 시작한 부분은 도려낸다. 눈은 맵고, 개수대에 잔해가 가득이다. 껍질은 일반 쓰레기로 따로 모아 버리고, 도려낸 것들은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해야 한다. 아침 출근 전이고, 다른 야채들도 씻고 볶아야 하고, 도시락도 싸야 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 해치워버리자.’ 


서두르려다 그 마음에 제동을 건다. 이 일은 ‘해치워버려야 할’ 일인가.
이 일의 가치는 다른 것에 비해 덜한가.
하루의 일상 중에서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일이 있을까.
누군가 농사지은 양파를 함부로 버리지 않게 단도리 하고, 그걸로 내 몸을 위해 소박한 반찬을 만드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뭘까. 


나는 오랫동안 집안일을 해치워버려야 할 일로 분류했었다. 이를 반성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집안일은 끝없이 많은데다 그 일을 거의 혼자 해야 했고, 누구도 그 일을 하는 나를 대접해주지 않았다. 대가 없는 노동인 집안일은 서둘러 해치우고 내 시간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집안일에 대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집안일이 갖는 본연의 가치에 대해 충분히 평가하고 있고, 그 일을 하면서 나를 소외시키지 않게 됐다. 


그런데 이런 생각의 변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돼야 할 게 있다. 첫째, 집안일이 내게 강제된 노동이 아니어야 한다.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어야 그 일의 가치를 풍요롭게 느낄 수 있다. 식사 준비를 의무적으로 하지 않아도 되자 밥 하는 일이 즐거워졌다. 하기 싫으면 안 할 자유가 있어서일까. 둘째, 노동시간이 줄어야 한다. ‘당신이 먹는 음식이 곧 당신이다’라는 말이 있다. 18세기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의, ‘Tell me what you eat and I’ll tell you who you are’라는 아포리즘에서 유래했다. 나는 이 말의 의미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참 한가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이를 실천하려면 돈도 있어야 하고 시간도 있어야 한다. 퇴근하고 오면, 있는 밥과 반찬도 꺼내 먹고 치우기 힘든 사람들이 태반이다.   


우리는 마치 일하려고 태어난 사람들처럼 살아간다. 출근과 노동, 퇴근하는 데 인생의 대부분의 에너지를 쓴다. 살기 위해 하는 노동인데, 평생 그 노동에 얽매여 사니, 참으로 가련하고 허무하고 우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위해 밥을 짓고 도시락을 싸고 저녁밥을 지어먹을, 기본적인 집안일을 여유롭게 할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19세기 산업사회의 노동시간은 연 3000시간이 넘었다. 현재 독일, 프랑스의 경우 노동시간을 그 절반(1500시간 이하)으로 줄였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2019년 기준 1967시간이다. OECD 평균(1726시간)보다 꽤 길다.‘2022 세계 행복보고서’를 보면 행복지수는 OECD 최하위권이다. 노동시간은 최상위권, 행복지수는 최하위권이다.     


행복은 어디서 올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충만함, 평온함이 클 때 행복감이 높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는 소소한 충만함을 선사할 만한 것들이 깨알같이 박혀 있다. 하지만 이를 발견하고 누리고 공유할 여유가 우리에겐 너무 없다. 양파 껍질을 벗기면서도 나는 충만할 수 있다. 그러니 내게, 그리고 우리에게 시간을 허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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