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라서
1990년대 인기몰이를 했던 포켓몬스터 수집용 카드가 경매에서 4억원 가량에 팔렸다. ‘라자몽’이 그려진 1999년 영문 초판본 카드라고 한다. 국내도 포켓몬 열풍이 다시 분다. 띠부띠부씰(붙였다 뗐다하는 스티커)이 든, 포켓몬 빵 5종이 재출시됐는데 인기 폭발이라 구매가 쉽지 않고, 포켓몬카드 놀이도 재유행이다. 유행은 순환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이 있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어떤 중학교 선생님이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김연아를 모르는 아이들과 수업하게 됐다고. 피겨여왕 김연아를 모를 수가 있다니 싶다가도 금세 그럴 수도 있지 고개를 끄덕인다. 시간은 늘 뭉텅뭉텅 지나가고 그 흐름 속에서 인간은 나고 성장하고 죽기를 계속하는 통에,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저마다 크고 작은 세대 차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나는 알지만 상대는 모르는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면서.
살아온, 혹은 사는 시간대가 달라서 생기는 유행이나 세대 차는, 좀 몰라도, 늦게 알아도, 잘못 알고 있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대와 무관하게 그 가치를 분명히 알아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그게 바로 역사다. 역사는 너무 복잡해서 외면하고 싶겠지만, 역사가 누군가의 절실한 삶이었음을 공감하면 역사를 아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경험할 수 있다.
4월이 오면 진달래 생각이 난다. “…그날 스러져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4.19 때 희생된 이들을 기린 노래, <진달래>의 한 소절도 잊히지 않는다. 4월의 진달래는 세상의 정의가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던, 스무 살 무렵의, 순수했던 나의 젊음도 소환한다. <진달래>를 부를 때마다 명치 끝이 뻐끈하게 뜨거워지면서 비장한 슬픔을 느끼곤 했다.
1960년 3월 15일 자유당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을 대놓고 우롱한, 부정선거를 자행한다. 투표 시작 전 미리 투표함에 40%(4할)의 위조 표를 무더기로 집어넣었다니 기가 막힌다. 돈 주고 표를 사는가 하면, 기표소까지 들어가 누구를 뽑는지 감시했고, 깡패를 동원해 야당 선거관리인을 투표소에서 쫓아냈다.
그날 마산에서 위조 표가 가득 든 투표함이 발각되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날의 시위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4월 11일, 3.15 마산 시위에 가담했던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실종 27일 만에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바다 위에 떠올랐다.‘맺혔던 한이 터지듯’전국의 중고등학생, 대학생,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점차 학생 시위의 주역이 지방 고교생에서 대학생으로 바뀌었고, 부정선거 규탄에서 독재정권 퇴진과 민주 수호라는 혁명적 요구로 변화했다. 이승만 자유당은 이를 무력으로 제압하려 했다. 1960년 4월 19일, 하룻동안의 시위로 서울에서만 100여 명, 부산에서 19명, 광주에서 8명 등 전국적으로 186명의 사망자와 602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4.19 시위 사진을 보다 보면 마음이 아려온다. 너무 어린 학생들의 절규를 봐서일까. 임동성 어린이(종암초 3)는 시위하는 형과 누나들을 따라다니다 경찰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수송초 6학년 전한승 어린이도 총탄에 희생됐다. 수송초 학생들은 4월 26일 덕수궁 앞에서 “아저씨들, 부모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절박하게 외치는 그들의 앳된 얼굴에 서린 비장함….
봄꽃은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산수유들. 추위가 겨우 수굿해지고 서투른 연두빛 새싹이 겨우 고개를 내밀 무렵, 이들은 굳은 가지를 뚫고 나온다. 새순의 호위도 없이, 용감하게. 이렇게 여린 꽃잎들이 어떻게 그 굳은 가지를 뚫고 나왔을까.
젊음의 솔직함과 열정에 넘치는 순수함, 그 힘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