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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Feb 21. 2018

터키 카파도키아
경이로운 자연, 사람을 품다

별 정보 없이 닿은 땅이다. 세상에 이런 장관이 또 있을까.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땅이다. 언뜻 황량해 보이는 이 기암괴석들에 사람이 깃들어 살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경외감을 느끼게 했다. 자연이 사람을 품고 사람이 자연을 품은, 카파도키아는 참으로 놀라운 곳이었다.  



터키 여행이 두 번째다. 터키의 땅, 아나톨리아는 넓고 다채롭다. 지난 여행에서도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았단 기억이 난다. 여행의 딱 중반쯤 이스탄불을 살펴보고 다음날은 카파도키아(Cappadocia)로 이동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여행전문가도, 여행전문 기자도 아니어서 벌룬 투어 정도만 떠올리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카파도키아는 아나톨리아 중부 내륙에 있는데 이스탄불에서 가려면 버스로는 11시간 남짓 걸린다니 꽤 먼 곳이다. 탑승을 기다리는 여행객에게 낯익은 피로가 엄습한다. 

카이세르 공항에 닿을 무렵, 해는 기울었고 낯선 길을 달렸다. 한참 황량한 어둠 속을 달리다 보니 저 멀리 꼭 크리스마스 점등처럼 비탈마다 불빛이 반짝였다. 순간 낯설고도 진기한, 판타스틱한 동심이 내게 전해져왔다. 

카파도키아 여행객을 맞는, 숙박시설이 모여 있는 위르귀프. 이틀을 묵기로 한 호텔에 짐을 푸는 데 저절로 탄성이 새나왔다. 도대체 이런 집은 어떻게해서 생겨난 거지? 비탈에 구멍을 내서 집을 지은 걸까? 오래된 집을 개조한 걸까? 새로 이런 형식으로 지은 걸까? 굴 속을 파내서 지은 것 같은 안온한 쉼터. 어리둥절한 채 잠이 들었다. 이 기이함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다음날 오후 늦어서야 겨우 풀 수 있었다. 


벌룬투어, 풍선을 타고 훨훨 날아올라


새벽 공기가 제법 찬 11월 중순. 커다란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다니! 날고 싶다는 인간의 꿈이 비행기를 만들어내기 전, 인간은 하늘에 열기구를 띄웠다. 최초의 열기구 탑승은 1783년. 파리 근교에서 종이로 만든 열기구를 타고 25분 가량 비행한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어릴 때 동화책에서나 보던 장면이다.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줄이야. 

든든하게 옷을 챙겨 입고 채 밝지 않은 길을 달려 허허벌판에 닿았다. 여기 저기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곳곳에서는 벌룬에 바람을 넣느라 분주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황량하다. 민둥산인가? 추수를 마친 마른 풀섶이 빈들에 힘없이 누워 있다. 앙상한 나무 몇 그루 점점이 보이고 온통 바위투성이다. 사진으로 본 멋진 광경이 도무지 펼쳐질 것 같지 않았다. 현실은 늘 더 어설픈 법이지. 

하지만 웬걸. 하나둘 벌룬이 붉을 밝히며 우뚝 서기 시작했다. 어둠이 배어 있는 어스름한 새벽녘, 거대한 벌룬이 불을 불을 밝히자 마음속 동심이 기지개를 켠다. 드디어 탑승 완료! 황량한 대지 위에 펼쳐진 하늘 위로 거대한 벌룬이 점점이 두둥실 솟아올랐다. 무채색의 하늘과 대지가 잇닿아 있었고, 그 공간 사이를 형형색색의 벌룬이 날아오른다. 눈이 가장 좋은 렌즈라고 했던가. 이 광활함을 어찌 좁은 카메라 렌즈로 담을 수 있으랴.


삶은 계속되고 있다, 파샤바 계곡


벌룬 투어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꽤 높이 날지만 안전해서 놀이기구를 좋아하지 않는 겁 많은 나도 너끈히 도전해볼 만했다. 부랴부랴 숙소로 돌아와 허둥지둥 허기를 채우고 다시 탐방에 나섰다. 어제의 어둠과 새벽의 여명 속에서 미처 보지 못했는데, 어디를 가든 낯선 풍광이 펼쳐진다. 민둥산인 줄 알았던 것들의 정체는 끝없이 이어져 있는, 아무 때나 툭툭 솟아 있는 바위들이었다. 

하나둘 불을 밝히는 벌룬들. 장관이다. 

차 안에서 나른하게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카파도키아라는 지명을 터키 지도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지명이 아니라 여러 지역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라고 했다. 차 안에서 바라본 밖의 풍광은 메마르고 황량했다. 포도주와 밀 농사가 많다지만 추수가 끝난 터라 들판마저 비어 있었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모양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이한 바위들이 끝없이 이어져 나도 모르는 새 자연의 위용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경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명소로 꼽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카파도키아는 <스타워즈> 1편의 촬영지였는데, 루카스 감독이 이곳을 “지구의 자연이라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지역”이라고 했다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4세기에서 13세기에 사람들이 이 기암 바위에 깃들어 살면서 생긴 마을들을 일컫는다. 그러고 보니 길쭉하고 뭉툭한 바위들, 갖가지 모양의 바위들 한쪽이 둥그렇게 파내져 있었다. 바위가 물러서 구멍을 파내는 게 어렵지 않아 사람들이 바위에 굴을 파 주거지로 삼아왔단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비어 있는 이곳에 비와 바람을 피해 깃들어 살던 사람들을 상상해본다. 자연은 이렇게 사람을 품었고, 사람들은 자연의 위안 속에서 아이러니하게 또 자연과 싸우며 문명을 일구며 오랜 삶을 이어왔으리라. 낯모르는 행성 같은 이 황량한 곳에서도 인간은 오랜 역사를 일구며 삶을 지속해왔다.  

어느덧 파샤바 계곡에 닿았다. 우리가 짐작하던 계곡과는 달랐다. 기암바위들은 보통 여러 형상들을 하고 있어서 이름 붙이기 놀이를 해도 재밌을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단연 버섯바위였다. 일부러 조각을 해놓은 것 같은 거대한 버섯바위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대규모 화산폭발로 용암바위가 만들어졌고, 그 주위에 후폭풍인 화산분진이 내려앉아 응회암으로 굳어져 둘러쌌단다. 그런데 응회암은 상대적으로 용암바위에 비해 무르고 약해서 쉽게 깎여 나가 버섯 모양이 되었다고. 개구쟁이 스머프들이 사는 버섯마을은 카파도키아의 버섯마을에서 영감을 얻었단다. 

파샤바 계곡의 기념품점. 삶은 계속되다. 

차에서 내린 일행들이 곳곳으로 흩어져 셔터를 누른다. 홀로 가만가만 길을 걷는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오색이 나부끼는 가게가 들어서 있다.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었다. 그 사이를 지나 뒤쪽에 이르니 구멍이 뚫린 바위들이 연이어 펼쳐졌다. 나들이 나온 어린아이가 불안한 걸음을 뛰어다닌다. 젊은 아빠가 환하게 웃으며 뒤따른다. 바로 옆에는 누군가 살았을, 바위의 구멍들이 입을 벌리고 있다. 

그렇게 삶이 계속되고 있다는 평범한 사실에 문득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동굴 교회 쾨레메 야외박물관과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지하도시 데린쿠유


터키 여행의 난점은 지역이 넓어서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카파도키아도 마찬가지. 가봐야 할 곳들은 지천인데 차편 이용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특히 도시가 아니라 시골이라 차편도 많은 편이 아니고. 여행객들로서는 아쉽기 그지없다. 그래도 밀집된 동굴교회를 발굴해서 조성한 괴레메 야외박물관은 지나치지 않길 바란다. 바위 굴을 파서 그리스도인들이 지냈던 역사는 아주 오래다. 4세기 무렵 로마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 모여 살았고, 이후 오스만 투르크 시대에는 이슬람의 핍박을 피해 동굴 교회를 짓고 신앙생활을 했다고 한다. 동굴 입구를 들어가면 프레스코화가 희미하게 남아 그 역사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괴레메 박물관을 나와서 데린쿠유를 갔는지 그 역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메모를 게을리한 탓이다. 표를 끊고 무작정 안내를 받아 지하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하도시에 대한 정보가 없었으니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큰지 알 턱이 없었다. 폐쇄공간에 대해 예민한 편이지만 이미 출발을 했으니 무작정 따라 들어갈 수밖에. 덩치 큰 사진기자들로서는 더 곤혹스러웠을 터. 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참으로 진기한 경험이었다. 미로와 같은 길들이 줄줄이 연결돼 있는, 지하 8층 깊이의 지하도시. 현재 공개된 곳이 지하 8층이지 거의 20층까지 방을 냈다고 한다.

1층과 2층에는 수도원, 부엌, 저장고, 침실, 와인창고, 식당 들이 있었고, 3, 4층에는 무기저장고와 은신처 터널이 있었단다. 환기와 저장, 식수 등 모든 곳을 완벽하게 갖춘 이 거대한 지하도시의 상주인구는 1만여명으로 추정된다고.   

가이드의 설명이 입이 딱 벌어진다. 카파도키아 지역에는 이외에도 모두 36개의 크고 작은 지하도시가 있는데, 지하도시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서기 6~7세기 이슬람의 종교박해를 피해 숨어들어 살았다고 한다. 이곳은 고대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힌다니, 인간의 상상력과 생존력, 기술적 능력에 찬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파노라마 뷰포인트의 나자르본주가 결려 있는 나무

떠나오고 나서야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카파도키아 여행은 특히 그렇다. 별다른 정보 없이 이리저리 쫓아다니느라 그저 눈으로만 감탄했는데, 두서너 달 흘러 다시 떠올리니 정말로 놀랍고도 진기한 여행이었다. 

카파도키아의 마지막 밤, 한 장의 사진과 짧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파노라마 뷰 포인트라는, 카파도키아의 장대한 경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곳에서 나자르본주를 온몸에 두른 마른나무 한 그루를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그 아래 이렇게 적었다. 그저 우리 모두의 액운을 막아달라는 기도로 사진 한 방을 박았노라고. 과거든 현재든, 여기에서든 저기에서든, 우리 인간은 질기게 삶을 이어간다. 그런 우리 모두에게 불덩이 같은 액운만큼은 비껴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맞으며 그곳에 서서 잠시 빌었다. 새해가 되고 보니, 그 기도가 더 간절하게 다가온다. 


>> “자연과 인간이 공들여 함께 만든 걸작품”

수백만 년 전 에르시예스 산(Erciyes 3,916m)에서 격렬한 화산 폭발이 있은 후, 두꺼운 화산재가 쌓여 굳어갔다. 그 후 수십만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모래와 용암이 쌓인 지층이 몇 차례의 지각변동을 거치며 비와 바람에 쓸려 풍화되어 갔다. 그렇게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응회암은 인간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굴을 팔 수 있을 만큼 부드럽다. 날카로운 돌만으로도 절벽을 뚫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훌륭한 요충지가 되어주었다. 이 바위촌의 첫 입주민들은 로마에서 박해를 피해 건너온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암벽과 바위 계곡 사이를 파고 깎고 다듬어 교회와 마구간이 딸린 집들과 납골소와 성채를 만들고, 지하도시까지 건설했다. 결국 카파도키아는 자연과 인간이 공들여 함께 만든 걸작품으로 남았다

‘터키 카파도키아 - 개구쟁이 스머프들의 고향 마을로 가는 길’(네이버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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