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메말랐던 가지에 봄물이 오르면 쭈뼛쭈뼛 새 기운을 장착한 아기 같은 ‘움’들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민다. 보드랍고 여린 것들이 어떻게 그리 단단한 가지를 뚫고 나오는지 언제나 신기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확장성을 품고 ‘움’처럼 태어난 우리들.
봄이 막 시작되려는 무렵, 나는 세상에 등장했다. 세상에 나오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며 생일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들 하지만 속으로는 그런 것 같지 않다. 큰 기대야 없겠지만 그냥 지나가는 게 여간 섭섭지가 않다. 태어난 일보다 살아내야 할 일들이 힘겨우니, 일 년에 하루 그날만큼은 꽃도 주고 선물도 주고 맛있는 밥도 함께 먹으며, 주인공으로 대접해주는 건 가치 있는 일이다.
이혼이라는, 뜻밖의 선택을 하고 보니 생일 보내는 게 까슬까슬 신경이 쓰였다. 결혼 중이라면 선물도 받고 식구들과 함께 식사도 하는, 조금 의례적인 시간을 보냈겠지만 이제 식구라고 해봐야 나가 사는 아들아이 빼면 달랑 딸아이와 둘이다 보니 이런 의례성이 호들갑스러워 보이고 김 빠진 사이다 맛 같았다. 그래서 이혼 전후의 어수선한 몇 해 동안 생일을 유야무야 보냈고, 내심 그게 뭔가 서글픔을 가중시켰던 기억이다.
그래서 이혼한 첫 해, 장소도 정하고, 친한 선후배와 친구들을 불러 모아 나름 성대한 생일파티를 벌였다. 참 웃기고 면구스러운 일이긴 했지만 힘들 때 나를 위로해줬던 그들과 핑계 삼아 놀고 싶었다. 그날, 마음속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나를 응원해 달라고 그들에게 부탁했다. 만일 언젠가 다시 자축 생일파티를 한다면 그때보다는 훨씬 더 재미나게 해봐야지 싶다. 생일은, 놀 핑계로 삼기 아주 맞춤한 날이니까.
시간이 흐르고 상처가 아물자 많은 감정이 수더분해졌다. 올해 생일에는 모처럼 아이들과 모여서 밥을 먹었다. 아들에겐 작은 화분을 사달라고 했다. 나에 대해 잘 아는 딸아이는 세심하게, 이것저것 챙겨서 선물로 주었다. 생일카드와 함께. 그런데 올해의 카드 글이 좀 다르다. 내용 자체는 별다를 게 없는데 ‘지나야~ 로 시작해서, 우리 이렇게이렇게 하자’로 끝을 맺었다. 카드 어느 구석에도 엄마, 혹은 딸이라는 말은 없었다.
그날 집에 와서 그 짤막한 카드를 일기장에 붙여두었다. 그리고 다시 들여다봤다. 그녀의 카드를 처음 읽었을 때 낯선데도 기분이 좋았던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모녀지간보다 동거인처럼 지내오고는 있지만, 카드 속의 나와 그녀는 더 완벽히 동등한 느낌이었다. 그녀에 대한 나의 보호의무가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만큼, 나에 대한 그녀의 보호의무가 무거워졌을 수도 있다.
아들아이도 종종 나를 ‘엄마녀석’이라고 칭한다. 그들은 어느새 ‘나의 아이들’이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셈이다. 동시에 그들과 나 사이가 아주 평평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속절없이 자꾸 시간이 흐르면 이 평평함마저 다시 흔들릴 것이다…. 어느 순간 그들은 힘이 센 어른이 될 것이고, 나는 반대로 아이처럼 자꾸 작아질 것이다.
딸의 카드를 받은 날 한참 필사 중이던 영어소설 《Number the Stars》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아주 인상적인 부분이라 밑줄을 그어두었는데, 그 상황이 딱 오버랩됐다. 잠깐, 소설 얘기를 해두자면.
주인공은 나치 점령 아래 있던 열두어 살 된 네덜란드 소녀 안나마리다. 안나마리의 언니 리사는 결혼을 코앞에 두고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리사와 결혼을 약속한 청년이 피터다.
안나마리와 가족은 유대인 이웃을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 쓴다. 피터는 유대인을 탈출시키는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 긴박한 순간이 왔다. 피터가 안나마리 가족을 막 떠나는 순간, 약혼녀였던 리사의 엄마를 이름으로 부른다. 엄마의 이름은 잉게Inge다.
피터가 자기 엄마의 이름을 부르는 걸 들으며 안나마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It was as if he had moved beyond his own youth and had taken his place in the world of adults.”
그가 유년에서 어른의 세계로 옮겨갔다고.
딸 아이가 나를 ‘지나야~’라고 부른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느꼈다.
어른의 삶은 참 진부하다. 물론 여러 가지 장점들이 없진 않지만(삶의 묵은 맛도 보게 됐고, 인생도 좀 알 것 같고, 어떤 면에서는 더 자유로워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진부한 건 사실이다. 어른의 세계로 오면서 바뀐 게 많은데, (이름 얘기를 해서 그런가) 특히 이름으로 불릴 일이 거의 없다. 나를 ‘지나야~’ 라고 하거나 ‘김지나 씨’라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세상엔 거추장스럽고, 걸리적거리는 호칭이 너무나 많다. 요즘은 주로 ‘대표님’이라고 불린다. 처음에 들을 때 내 옷 같지 않아 엄청 어색했는데 이젠 꽤 익숙해졌다. 일과 관련된 관계가 아닌데도 이렇게 불릴 때도 많아졌다. 우리 말 관습의 특징이기도 하다만. 팀장님, 부장님, 대리님, 이사님, 대표님…. 주로 직책에 ‘님’자가 붙는 이 소통 방식은 불편하고 지나치다. 하지만 이 관습을 뛰어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얼마 전 회사 내 호칭을 바꿨다. 내가 주장한 건 아니다. 마치 스타트업인 양 별칭을 부르기로 했다. 나는 대환영이었다. 직원들에게(나이 차가 많이 나서 저절로) ‘○○야~’라고 부르는 게 불편했는데, 그렇다고 ‘○○씨’라는 말도 잘 안 나왔다. 대표님이라는 호칭보다 ‘소머즈님’(내 별칭이다)이라고 불리는 게 더 좋았다. 금세 적응이 되었다.
다시 돌아와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란 드라마를 즐겨본다. 담백한, 무공해 같은 내용이다. 다섯 명의 의대 동기들의 우정을 볼 때마다 부러워서 눈물이 나려 한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일. 그건 어른의 세계에서 잠시 유년의 세계로 가는 일이다. 유년의 세계의 핵심은 친구들이다. 서로 너무나 다른데도 어릴 때 만나 너무나 이해하는 게 많은, 너무나 아름다운 관계.
어른의 세계로 오면서 이름만 잃은 게 아니고 친구들도 잃어버렸다….
맥없이 누군가와 술 한 잔하고 싶을 때, 가장 생각나는 건 아마도 나를 ‘지나야’라고 불러주는, 친구들인 건 그래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