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가 모기소리, 낙엽소리, 공기청정기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최근 이사를 하면서 문을 활짝 열어놓아서 그랬는지 한동안 밤마다 모기가 튀어나와 잠을 설쳤다. 그렇지만 돌도 안된 아이가 있다 보니 모기약을 피우기도 어려워, 자려고 누웠다가도 귓가에 모기소리만 나면 벌떡 일어났다. 한 손엔 핸드폰 손전등, 한 손엔 모기약 혹은 휴지를 들고 눈에 불을 켜고 모기를 찾았다. 엄마야 옆에서 무얼 하던 준이는 항상 평온하게 잘 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얼굴 여기저기 모기에 뜯긴 채 웃고 있다. 기분이 좋은 거 보니 밤새 잘 잤는가 보다. 나는 주섬주섬 비판텐(아기용 만능 크림)을 찾으러 나간다.
문득 생각했다. 아기들은 원래 모기소리를 못 듣나? 아니면 준이는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해서 안 일어나나?
진짜 피곤해서 기절한 상태 아니고야 성인들은 귀 옆에서 엥~소리만 나면 눈이 번쩍 떠지지 않는가. 준이가 듣는다 한들 피할 길도 없겠지만 갑자기 짠해졌다. 준이는 꿀잠은 자겠지만 모기에게 이렇게 매번 뜯기겠구나나................ 됐고 그럼 내가 매일 모기를 잡는 수밖에!!!
준이는 45db이다. 즉 45db의 소리부터 들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같은 데시벨이라도 주파수에 따라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는 차이가 있다. 저 정도 수치라면 조용한 곳에서의 일상 대화는 들을 수 있으나 소곤거리는 대화는 잘 듣지 못한다. 또 먼 거리 혹은 시끄러운 공간에서의 대화의 선별이 어려울 수 있다.
어제 늦은 귀가 중 사람 없는 아파트 단지 내를 걸어 들어오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쫄보라서 겁을 먹어 더 빨리 걸어가는데 바람에 마른 나뭇잎이 나에게 굴러오는 소리에 또 놀랐다. 이런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라던가 초침 소리라던가 바람소리 같은(태풍 말고) 자연의 소리가 보통 20-30db 정도라니까 준이가 낙엽소리에 쫄보가 될 일은 없겠구나 싶다.
그런데 조금은 서글프다. 쫄보 겁쟁이어도 되고, 모기 때문에 잠을 설치더라도, 초침 소리에 거슬려서 열두 번씩 나를 깨우는 예민 쟁이가 되더라도 보청기 없이 잘 들었으면 좋겠다.
너가 예쁜 빗소리도 듣고, 풍경소리도 듣고, 공기청정기 돌아가는 소리도 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