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생이 Oct 29. 2023

엄마에게 온 손편지

당신과 사랑했던 날들


적힌 건 고작 여섯 줄


사랑하는 딸

엄마가 다 잘못했어
안동에서 있어던 일 다 잊어버리고
마음 속에 응을리 다 풀고
엄마를 용서해줘
매일 니를 위해 기도 하고 있어
항상 건강 잘 챙기고 행복하게 살아


‘행복하게 살아’ 여섯 자에

매일 매일의 기도를 담았는지

이걸 쓰는 엄마가 자꾸 떠오른다

 

글자 한 자

자모 한 획

적을 때의 마음이 어땠을까

꾹꾹 눌러보게 된다


사랑하는 딸 이라고 한번도 부른 적 없잖아


엄마에게 달려가 안기고

엄마를 히로인처럼 여기고

자랑스러워했던

어린 나날들이 스쳐갔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는가


내가 엄마와 거의 연 끊다시피 하면서도

무거운 마음을 가졌던 건

엄마를 사랑했기 때문이구나


사랑하고 있었고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 받고 싶고

그게 되지 않으니 외면했던 것일까


엄마는 나를 사랑하는가


한번도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 느낀 적 없는데

행동의 모순과 무심코 뱉은 말

그건 결코 주워 담을 수 없는 것


사랑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기도와 제안

우리가 사랑했던 날들이 지나간다


엄마와 손 잡고 걷던 날

손 잡고 다리 건너 장 보고

봉지 잡고 다리 건너왔던 날

장바구니도 없었는지

미련하게 많은 짐 비닐봉지에 담아 한쪽씩 나눠쥐고

노랗고 빨갛게 손 눌리도록 한없이 걸어왔던 길

고통을 감내하는 수행자된 듯

그때부터 나는 참을성이 생겼던 걸까


엄마 손목과 팔 안쪽이 부드러워

내내 비볐던 날


엄마에게 안기어 잠들었던 날


엄마 김영순

목놓아 이름 부르며 찾았던 날


엄마

엄마

엄마

왜 그랬어 정말로


우리는 잃어버린 4년을 가득 쥐고 있어서

사랑하는 4년을 잡을 손이 없었다


덜컥 엄마한테 달려가 안기고 싶기도 했고

같이 편지 보내야할 카드가 없었다면 어쩔 뻔 했어,

그럼 이 편지를 쓰지 않았을거야?

원망과 불신이 달려오기도 했다


각지지 않은 니은과

둥글둥글 부드럽고 옆으로 긴 이응들.

모나지 않은 글씨체로

왜 항상 당신은 모나게 말을 했었나

내 이름자 ‘희’ 이렇게 웃는 얼굴처럼 해놓고

왜 그리 우는 얼굴을 했었나


엄마,

엄마가 행복하게 살아

그게 내 행복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