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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Apr 05. 2024

독립적인 사람

의존이 들어오지 못하게

과학적 사고를 중시하는 현대인의 일부로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끔 사주나 점을 보았다는 지인들의 이야길 전해 들을 때면 귀가 얇아집니다. 거기 정말 용하더라말까지 합세하면 눈동자가 염소처럼 직사각이 되지요. 하지만 사주나 점을 보기 위해 비용을 지불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불길한 얘길 듣고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는 걸 원치 않때문이죠. 그렇잖아도 걱정투성인 사람인데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걱정을 사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르고 가다 넘어지면 때부터 수습해도 될 일을 미리 걱정하기엔 제 기력이 미천하답니다.  


다가올 날에 우환이 칠 거라는 얘길 듣고 멀쩡할 사람이 어딨겠어요. 일단은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보는 최우선이잖아요? 점집 권유에 따라 미래를 바꾸는 행위에 몰두하겠죠. 온전히 점집에 의존하는 자가 되어서 말예요. 점집 그 한 사람 말에 휘둘린 채 일어날지 아닐지도 모를 상황에 대비하느라 애쓰는 일 따윈 어쩐지 나 자신을 박해하는 듯해서 못마땅하더군.


내 일이고 내 삶인데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한다면 정작 내가 설 자린 점점 좁아지지 겠어요?


라고 거침없이 말해보지만 어쩐지 찜찜한 기분에 휩싸이는 건 왤까?


아들에게 이상형의 여성상을 물어봤어요. '독립적인 사람'이 좋다더군요. 상대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면 된다고 말예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내조를 잘하는 사람 뭐 이런 일반적인 답이 나오려나 했는데 '독립적인 사람'이라는 대답이어서 의외였어요.


살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런 건 부부가 함께 의논하고 만져줘야 되는 거 아닌감? 네 일이니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하라는 건 너무 매서운 채찍 같은데.


큰 일은 서로 의논하고 돕는 게 당연하지. 스스로 할 수 있는 선택이나 의사 결정까지 의견을 고 의지할 필욘 없다는 뜻이야. 뭣보다 자기 삶을 관리할 줄 아는 뚜렷한 사람을 말하는 거야.


한방 세게 얻어터진 느낌이었네. 눈두덩이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입 안에 끼웠 마우스피스가 핏물을 휘갈기며 날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동안 식구들에게 참 많이도 의지하며 사소한 것도 대신 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는 생각에 닿았때문이죠.


성가시다는 이유도 컸고 기계치라는 변명도 한몫 거들었네요. 전자기기 하나 바꾸고 나면 잔 글씨로 쓰인 매뉴얼이 읽기 귀찮았어요. 이해하기도 버겁고요. 누군가 읽고 간단하게 설명해 주길 바랐던 거죠. 애들은 읽지 않아도 척척 해내니까. 그런 까닭에 휴대폰 바꾼 후엔 꽁무니만 쫓아다녔지요.


나서기 싫은 일 앞엔 남편의 등을 밀었던 적도 있었고요. 어떤 문제로 갈등이 일었을 때 상대와  고성이 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남편을 떠밀었네요. 남과 얼굴 붉히며 싸우기 좋은 사람 어딨겠습니까? 잘 알면서도 '갈등을 싫어하는 사람'이란 말 뒤에 숨어 그 싫은 일을 대신 하도록 식구를 괴롭혔더라고요. 아들 말이 제 결함을 들추는 건가 싶어 순간 움찔했지 뭐예요.


그러고 보니 '독립적인'이란 말에는 강인함이 배어 있었네요. 본인 문제를 스스로 처리하면서 '자기 자신'으로 성장하려면 나약해서는 안 될 일이니까요. 그런 거 못하는 사람이라고 단정지어 놓고 그 안에 갇혀버리면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다간 주변의 사소한 참견에도 좌우될 테니 내 판단 내 결정이 사라지겠죠. 번거롭더라도 '그런 거 못하는'이란 틀은 이제 만들지 말아야겠어요. 혹여 올가미가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니까요.


이십여 년 만에 압력밥솥을 샀어요. 매뉴얼이 도톰한 데다 글씨도 깨알이더요. 이번엔 그 자잘한 글씨를 읽어가며 스스로 사용법을 익혀봤어요. 음성 볼륨 조절하는 법, 주기적으로 밥솥 청소하는 법, 차진 밥이냐 구수한 밥이냐 종류 선택하는 법 등 무슨 기능이 그리도 많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읽으며 만지작거리다 보니 기계도 뭐 별 것 아니더라구요. 


부모로부터 독립하라고 자녀만 닦달할 게 아니라 부모도 자녀로부터 독립해야 변화무쌍한 시대에 의존없이 대응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력하게 물러서지 않으려면 좀 더 '독립적인'자신으로 바로 서야겠어요. 현대인의 일부로 당당해지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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