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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Nov 27. 2024

도대체 나라를 몇 번 구했냐구요?

살다 보니 또 다시 생별과 맞닥뜨렸다. 과거와는 다른 상황이라 걱정 반 홀가분 반이 폈다 졌다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사실이며 떠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니 손 흔들어 담담히 보내야지 어쩌겠어.


연고도 없는 강원도 현장에서 남편을 데려가는 바람에 숙소도 구하 간소하게 살림도구도 챙겼다. 지방 근무는 여러 가지로 설 것이다. 전에는 함께 지낼 이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롯이 혼자 지내야 하는 실정이니 더 물설 것이다. 홀로 살아보는 건 평생에 처음이라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지만 생각은 태산을 넘어 험곡에 닿아있는 건 아닐는지. '혼자인 나'가 지루한 사람이라 걱정이 앞서긴 하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는 댓글이 치열하게 올라오는 눈친데 착각이런가?   

  

"혼자 살아보는 거 처음인데 어쩌?"    

처음이어서 설렘으로 들떴을지라도, 숙소 외에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됐으니 갑갑할지라도 장황하게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라 예상 그대로 덤덤하게 내뱉었다.     

", 그냥 사는 거지 어쩌긴 어쩌."  


젊지 않은 데다 고혈압 약도 복용 중이다. 건강식품이나 영양제 따위를 챙기며 본인 돌보기를 '굳이 왜?'라고 생각하는 타입인 데다 에너지는 아직도 술자리에서 얻는 사람이다. 모임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평일엔 숙소에만 콕 박혀있어야 한다. 해본 적 없는 청소와 빨래까지 감당해야 하고 늙수그레 굽은 어깨로 식당 한편에 쭈그려 앉아 혼밥으로 저녁을 때워야 한다. 그런 사정과 모습이 찰칵 찍힐 때마다 측은함과 염려도 함께 찍힌다.     


태평양에 조각배가 떴다면 숙소의 널널한 저녁 시간과 닮은 꼴이지 않을까? 운동하는 스타일도 아니어서 광야 같은 시간적 여유를 무엇으로 채워나갈는지. 새로운 마음으로 운동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찾는다 해도 끝나고 돌아온 숙소에선 고요한 침묵만 와락 달려들 것 아닌가. 부르짖던 노래들도 혼자인 것은 죄다 외롭다고 하지 않던가. 회식 문화도 줄어드는 추세니 그리움에 꺾이고 외로움에 꺾이는 건 아닐는지.  


찌개나 국을 끓이지 않아도 문제없고 침대에서 혼자 자니 대자로 뻗어도 되는 데다 구린 방귀도 뿡뿡 뀌어댈 수 있으니

'세상만사 모든 것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이라는 노래 가사를 당장이라도 개사판이다. 겁나게 하기 싫은 화장실 청소도 일주일에 한 번이면 무난할 것이고 늦은 밤 귀가로 수면에 방해받을 일 없으홀가분이 기세 좋게 터질 판이다. 측은함과 홀가분이 널을 뛰는 나와 달리 남편은 어떤 마음이려나? 어쩌긴 어쩌란 대답처럼 예사로운 수긍 그 마음 하나가 전부일까?

    

30대의 나였다면 표정 족이 달린 걸 먼 하늘 달빛조차 알아봤을 것이다. 살림과 육아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잖은가. 출퇴근만 하면 되는 상황이니   

'하늘이시여, 제게 뭐 이런 이벤트를 다!'    

하며 뜻하지 않은 유산을 상속받은 처럼 걷잡을 수 없들떴을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했던 때라 직장의 충성스러운 전사가 되어 얼씨구나 떠났겠지. 지금은 혼자인 시간이 충분한 데다 적적하다는 의미를 얼마간 알 것 같아 선뜻 반길만한 제안은 아니다.   


가족이 함께 있다고 노상 웃고 떠들며 왁자하게 보내는 건 아니지만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존재 아닌가? 어쩌면

'가족이 있어 다행이다.'    

 지극히 당연해서 별생각 없었던 실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곁에 있을 때는 존재감이 희석되다가도 빈자리로 남으면 필요 이상의 소중함을 느낄 때가 있지 않나. 나도 도 지금의 생별에서 배시시 웃어볼 날 있지 않을까? 메마르고 석한 가슴에서 섬세했던 '추앙'의 흔적 하나쯤 찾아내고는.   


'초침 소리마저 늘어지는 기나긴 밤에도

 너만 떠올리면 해죽해죽 웃음이 나'

처럼 달달구리해서 가슴 뛰었던 자국 사이로 근질근질 새살이 돋는 그런 날.   

  

'옆에 있어 다행이야.'     

처럼 찬란하진 않아도 함께여서 고마운 마음이 술렁대그런 날이 있을 법하다.


바쁜 일상을 끝내고 저녁이면 흩어졌던 가족이 돌아와 같이 밥을 먹는 시간. 성가신 일이 있었던 날이면 함께 분개하,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한껏 치켜세우는 밥상머리 얘기로 가족은 굵은 육쪽마늘처럼 옹골진 기운을 얻는다. 분노 부수기쁨 의 문양으로 삼는 밥상 앞 회복의 시간. 그 안에서 잠시 벗어났지만 생별단단한 울타리를 충만한 시선으로 바라볼 새 눈을 갖게 할 것이다. 거창하고 화려한 정의는 아니어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꼿꼿한 날들을 꾸려왔으니까.


'설렘'으로 떠났다 '갑갑'으로 돌아올지 '갑갑'으로 떠났다 '설렘'을 발견할지 알 수 없지만 그저 '잘 산 삶'의 한 시절로 간직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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