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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Sep 24. 2022

짝퉁 티셔츠를 입는 심리

사람 사는 이야기

가품을 두를 바에야 안사고 말겠어요


(선배) "와이프가 그러는데 말이야. 명품 휘두르고 다니는 사람들도 다 진짜 아니라고 하더라. 짝퉁이랑 섞는다는데?"

(나) "그거 사람마다 다를걸요?"

(후배) "전 가품을 두를 바에야 안사고 말겠어요."


후배는 자존심이 셌고,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짝퉁이란 표현조차 쓰지 않고, '가품'이라 말하는 후배를 보며, 어지간히 자존심이 세구나 생각했다. 난 짝퉁을 쓰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쓰면 쓰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이 정도로 가볍게 생각한다. 진품을 못 살 바에는 질 좋은 걸로 하나 사서 그걸 쓰겠다는 말도 '진품'을 의식하는 말 아닌가? 브랜드를 관리하는 입장에서야 이런 흐리멍덩한 태도를 가진 소비자들이 괘씸하겠지만 말이다.


짝퉁 하면 생각나는 일화 몇 가지


#방콕에서 구입한 짝퉁 시계

방콕 호텔 앞에는 시계 장수 아저씨가 있었다. 누가 봐도 명품 짝퉁, 예를 들어 까르티에 로마자는 이런 모양이어야 하는데, 그게 붙어있다던가, 롤렉스인데 야광 기능이 있다던가? 하는 시계를 팔았다. - 지금 검색해보니 야광 롤렉스가 있다. 크로마라이트로 코팅한 제품이라고 한다.

짝퉁 시계 가격은 1~2만 원 수준이었던 것 같다. 막 쓸 시계로 하나 구입해서 한동안 잘 썼다.


#동대문 그 세계

방콕에서 야광 롤렉스를 구입하고 기내 불 꺼도 잘 보인다며 좋아했던 언니와, 로마자가 이상한 까르띠에 짝퉁 시계를 사고 이쁘다며 좋아했던 나는 오프 때 동대문에 쇼핑을 갔다. 언니를 쇼핑몰 여기저기를 누비며 동시에 살 물건들을 스캔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언니 쫓아가는 것도 벅찼다.

(언니) "오른쪽에서 두 번째 가방 어때?"

(나) "어느 거요?"

내가 대놓고 쳐다봤나 보다. 가게 주인은 A급 물건이 있는데, 들어가서 볼 건지 물어봤다. A급이 뭔가? 밖에 있는 건 명품 디자인 따라한 것 같아 보이긴 했는데, 저건 그럼 B급 정도 되는 건가? 둘 다 딱히 쇼핑을 할 마음이 없던 터라 됐다고 하고 돌아왔다. 흠. 진짜 괜찮은 건 저 안쪽에 있나 보다.


#이태원 그 세계

이것도 꽤 오래전 일이다. 큰 아이 때 친해진 동생이랑 이태원에 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액세서리 가게였다. 요새 단속이 심하단다. 동생은 이번에 샤*에서 나온 시계가 있냐고 물어봤다. 그분은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샤* 시계를 들고 왔다. 이어 몇 개 제품을 물어보던 동생은 가방 하나와 지갑 하나를 사서 나왔다. 동생은 명품을 꽤 가지고 있었는데, 막쓸 용도로 가끔 짝퉁을 구입했다. 선배가 말한 케이스가 요런 케이스다. 나는 이런 루트도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태원 이태원 하더니, 정말 이태원이구나!

<출처 : Pixabay>

그게 당신 마음을 병들게 한다면

짝퉁을 좋아하는 사람은 허영심이 높다고 한다. 명품을 사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사지 못하니, 짝퉁으로 대신한다. 명품 디자인이 이뻐서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디자인 못지않게 '브랜드'가 주는 만족감도 무시 못한다.


전현수 정신과 의사는 <생각 사용 설명서>에서 '있는 그대로' 자신을 인정하지 못해 마음이 병든다고 했다. 명품을 사고 싶지만, 살 수 없 속상하다. 누군가 이게 짝퉁인지 알아챌까 불안하다. 그렇다면 그 마음을 놓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게 속상할 일이 아니고, 남들은 네가 뭘 들고 다니던 그다지 관심 없다고 말한다 한들 그 사람 속이 풀어질 것도 아니다.


하기야, 마음을 놓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래도 희소식이 있으니, 나이 들면 욕심이 준다. 일단 만사가 귀찮다. 남이 그러든 말든 신경을 안 쓰게 된다. 게다가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파악도 잘된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부차적인 문제들에 대한 관심이 준다.

그러니, 늙기를 고대하시길. 실제로 60이 넘으면 행복한 감정을 더 자주 느낀다고 하니 말이다. 


형편이라는 것은 경제적인 형편을 포함해서 지위, 아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되는데 모르면서 아는 체하려고 하니 힘들다. 돈이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되는 데 있는 체하려고 하니 힘들다.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지금 나의 형편은 그렇게 된 필연적인 과정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받아들이면 된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떻든 그것만 있도록 해야 한다. 다른 것이 있으면 그 차이만큼 괴로워진다. 우울증도 현재의 나와 다른 나가 있어 왜 다른 나처럼 못 살았나 또는 왜 못 사나 하는데서 온다고 볼 수 있다. 지혜로워지고 정신이 건강해지면 내가 하나만 있게 된다. 그것을 소중히 하고 다행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힘들지 않다. 경제적이든 인간관계든 자신의 형편에 맞게 하면 어렵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이 정신이 건강한 길이다.
<출처 : 생각 사용 설명서, 지은이 전현수>

한 줄 요약 : 행복하고 싶다면, 늙기 기다려라. 또는 빨리 철들어라. 허영심도 비교도,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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