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감정 위임을 멈춰

부재중인 마음에 위임 전결 권한을 주지 않기로 했다.

by 마인드 오아시스

지배당하는 자 or 지배하는 자


둘 중 고르라면 Yes or No?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지배당하는 자였다. 갑자기 뜬금없는 고백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30대 후반이 되도록 나는 자신의 내면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온 비겁한 루저였으니까.


"그래서, 뭐가 먹고 싶다는 거야?"

"무슨 말이야?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왜 늘 나만 검색해 봐야 돼? 너도 좀 찾아봐"


나랑 사귀었던 친구들이나 남자 친구로부터 들었던 말들이다. 물론 지금의 남편에게서도 예외 없이 듣곤 했다. 어느 하나 확실하지 않은 대답, 애매한 표정과 말투. 의견하나 제대로 내지 못하고 상대의 결정에 따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루저 그 자체였다. 이런 나에게도 사회생활에서 만큼은 제법 똑 부러 진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특별승진'이라는 확실한 성과도 있었으니까. 나를 봐온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리송한 표정으로 그저 신기했다.라는 반응 이더랬다.


이런 성격 탓에 '우유부단'이라는 단어는 내겐 치명적인 공포의 단어로 다가왔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런 글을 본 적 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보는지는 당신이 통제할 수 없지만, 당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보는지는 당신의 선택이다." 에피테토스의 명언이다. 그렇다. 결국 '우유부단'이라는 꼬리표도 내가 스스로에게 씌운 부정적 시선이었던 것이다.



"부재중이었던 마음이 로그인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자신에게 무관심했다. 살아가는데 급급하다는 온갖 핑계로 내면과 마주하기를 귀찮아했던 것.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인들이 나를 보고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정의를 내려주지 않았다면 인식조차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말해 보라'는 면접 질문에 흔히 부사와 형용사로 꾸민 대답은 할 수 있지만, 정작 진짜 나에 대해 말해 보라고 하면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생각보다 나에 대해서 관심이 없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나의 감정조차 타인에게 떠넘기는, 이른바 '감정 위임'을 하며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이를 극복하고자 강한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읽기와 쓰기였다.



감정 위임 권한을 나에게로 돌리자.


감정 위임을 멈추는 방법은 다양하다. 명상이 될 수도 있고, 운동이 될 수도 있고, 미라클 모닝 같은 루틴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그 방법이 '읽기와 쓰기'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면 타인보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내면을 관찰할수록 나조차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하곤 한다. '아, 난 이런 건 싫어하는구나', '생각보다 이런 것에 흥미를 느끼네?'와 같이 말이다. 더 이상 내 감정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비로소 나답게 살아가게 된다는 것.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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