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새벽이 제일 좋다. 밤 녀석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자러 가면 자리를 차지하고 기대앉은 것 같은 약간은 권태로운 새벽. 이른 아침 버선발로 해를 마중 나오는 활기찬 새벽 말고 밤인지 새벽인지조차 정의하기 어려운 모호한 시간. 도시도 잠든 듯 고요해지고 차 소리, 사람 소리, 백색소음마저 비켜나 숨소리마저 크게 와 닿는다. 이런 시간엔 책을 읽어도 좋고, 영화를 봐도 좋고, 잔잔한 노래를 들어도 그저 좋기만 하다. 가끔은 따뜻한 차와 달달한 간식의 낭만도 더해보고.
오래전부터 아끼는 김동률의 잔향을 들을 때면 깊은 새벽, 빽빽한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 위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 든다. 머리 위 검푸른 하늘 가득 별이 가득하고 여름밤 소나무가 뿜어내는 맑은 향이 주변을 에워싸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을 품는다. 때문에 그 풍경 속의 나는 전혀 외롭지 않다. 계절과 상관없이 들을 때마다 새벽의 이미지는 선명해지고 어딘가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코를 스친다.
"작품이 영혼을 어루만지는 순간"의 경험은 이후에도 강렬하게 남아 시야를 저마다의 형태로 왜곡시킨다. 새벽이 오감을 넘나들 때면 마음은 말랑해지고 무엇이든 수용할 듯 관대로워진다. 비로소 진솔하고 담담하게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된 나는 자신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다. 매 순간의 나를 사랑할 수는 없지만, 그런 새벽은 종종 별처럼 찾아와 시나브로 마음을 적시고 스스로를 애정할 힘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