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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27. 2022

서로의 여행 취향을 모른 채

남동생과의 여행기

남동생은 우리가 중학교를 지나서야 친해졌다고 말하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어울렸던 기억들이 많다. 동네 놀이터에서 뛰어놀다가 집 열쇠를 잃어버린 채 집 앞에 쪼그려 앉아 엄마 아빠가 귀가하실 때까지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땐 핸드폰이 그렇게 널리 이용되던 시절이 아닌지라 우린 아무런 방법도 없이 그럴 때마다(여러 번 잃어버렸다) 그저 엄마의 귀가를 기다리곤 했는데 당시엔 연락이 되지 않아도 답답해하지 않는 미덕이 있었다.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되지만.


병원 입사를 앞두고 기다리던 시기, 이때 아니면 당분간 장거리 여행은 꿈도 못 꾼다며 무리를 해서라도 유럽여행에 가고 싶었다. 모아두었던 돈으로 혼자 떠나기 위해 예산을 짰는데, 당시 답답한 상황에 있던 남동생에게도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엄마는  둘이서 함께 가기를 권하셨다. 나는 남동생과 대화하는 것도 좋고, 시간 보내는 것도 좋고, 게다가 함께 다니면 든든했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다. 우리가 서로를 잘 안다고 자신했으므로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엄청난 계산 착오였지만.


3주간의 동유럽 여행기간 동안, 초반의 여행자 마음에 취한 우리는 서로의 불편함을 모른 척했다. 당시 나는 알차게 시간을 쓰고 싶어 분, 초 단위로 계획을 세웠는데 스스로부터 그런 걸 좋아하는지, 원하는지 고민 없이 일단 가보고 싶던 명소를 줄지어 놓고 이어놓는 식이었다. 여러 곳을 방문한 덕택에 어떤 부분이 나를 감동시키는지 알게 되어 유익한 시간이었지만 남동생은 중간부터 못 견뎌했다.


남동생은 유하고 편안하게, 물 흐르듯 여행하고자 했다. 나는 누나의 책임감으로 불안하여 남동생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같이 다니려고 했다. 지금이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하고 밥 먹을 때쯤 만나 하루에 있었던 을 이야기하는 게 그땐 왜 그리 엄두조차 안나는 무서운 일처럼 느껴졌을까. 정말로 그를 잃어 국제 미아라도 만들까 봐 두려웠다. 남동생도 이미 법적 성인이었는데.


궁상스럽게도 대부분의 끼니를 싸고 맛없는 것이나 마트에서 구할 수 있던 것으로 요리해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되돌아보면 남동생은 그런 부분에 대해선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여행의 막바지, 아껴둔 예산을 큰맘 먹고 할당해 딱 한번 미슐랭 가이드 북에도 나왔다는 (비록 별을 받았는지, 아니면 그저 목록에 오른 것이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를 맛본 것 외에는 맛난 것도 제대로 사주지 못한 애석한 여행이었다. 끝끝내 서로 다른 여행 취향으로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고 여행의 피로도가 쌓여 서로에 대해 불만이 하늘을 찌를 듯했을 때쯤 한국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여행지였던 프라하는 명성답게 아름다운 곳이었을 테지만 남동생과의 언쟁으로 분노에 차있어서 뭘 봤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땐 준비하는 과정에서 원하는 바를 말해주지 않았던 남동생이 밉고, 나름 우리 여행을 위해 애를 썼던 내 노력을 무시한 채 짜 놓은 일정에 대해 "나는 이런 거 원한 적 없다."라고 불만을 표하던 그가 야속해서 이 녀석 다신 안 보고 싶다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남동생은 엄마 아빠를 포함하여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누나와의 여행이 좋았다. 나는 또 누나랑 여행 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나는 빈말로도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는데. 한동안은 쟤랑은 다신 그런 거 안 한다고 정말 이를 갈기도 했고.


그때 이미 남동생은 나보다 어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관리 소홀로 그 당시 찍었던 사진조차 남지 않은 지금, 그 여행기는 오로지 우리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나는 일전에 엄마에게 남동생을 낳아주어 고맙다고 한 적이 있었다. 정말 진심이었다. 서로 성장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믿음을 주고받는 존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다만 또 같이 여행을 가겠느냐고 묻는다면 전보다는 신중하게 결정할 테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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