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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r 03. 2021

함께하는 슬픔

나의 슬픔이 온전히 나만의 슬픔이 아니고, 너의 슬픔이 오롯이 너의 슬픔일 수 없다.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지만 우리는 열린 유기체로서 상호작용하고, 순간의 교집합을 만든다. 그 교집합은 작기도 크기도 한데, 작아도 깊고, 넓어도 얕기도 하고. 내가 바라보는 호수와 네가 바라보는 연못이 동시에 같은 것을 설명하는 수식어 일수 있고.


끈적이는 물풀 속에 하나 되어 함께 잠긴 분리되지 않은 듯 분리된 자아. 행복보다는 슬프고 괴로운 웅덩이가 산재하는 건 그 감정에 안테나가 더 예민하기 때문일까, 실제로 빈도가 잦기 때문일까. 마음도 위장처럼 단순하고 간단하게 채울 수 있는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나누고 손에 닿는 것과 같은 물리적 행위만으로 공허를 없앨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함께 밥을 먹고 걸어 나오는 길, 식사 동안의 온기는 차가운 겨울바람에 날아가고 먹먹함이 해질녘 하늘을 채운다. 즐거운 척, 핵심을 비켜나가며 의식적으로 가볍고 우스운 소리만 찾는 나.


공유된 슬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때로는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가까이 견뎌주는 것만이 서로를 위한 일은 아니니까. 잘난 척하며 서로의 밑바닥까지 파해치는 것이 서로를 많이 이해함과 동격이 될 순 없다. 분노가 극점을 찍고 한풀 꺾이는 때를 기다린다. 충동적으로 던진 말에 개구리가 죽지 않도록. 침묵은 나와 너를 보호하는 갑옷. 너는 너를 감싸고 나는 나를 감싸고, 그저 서로가 서로를 해하지 않도록. 영원으로 묶인 사람들의 위대한 점은 그럼에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연에서 비롯된다. 완전 배제의 선택지는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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