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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an 23. 2023

새해계획: 긍정의 순간 기록하기

온기

새해가 밝았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어제를 보내지만 12월에서 1월로 넘어가는 그 순간만큼은 의미를 가득 담고 싶어 진다. 어떤 한 해를 보내야 할까 더듬어 보다가, 좋았던 순간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는데 힘을 쓰고자 정했다. 내 삶에는 분명 즐거움과 기쁨, 설렘, 기대, 환상, 쾌락과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를 모두 '좋은데 이유가 있나, 그저 참 좋았지.'는 말로 모두 퉁치곤 넘겨왔다. 개인적인 즐거움에 주목하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고, 너무 하잘 것 없이 느껴지기도 했던 탓이다. 그렇지만 이래서 좋았지-를 떠올리는 동안 나는 그 순간의 행복을 곱씹고 더욱 진하게 음미하게 될 것이다. 기록은 블록처럼 하나하나 단위를 갖고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일 테지. 언젠가 내가 흔들리고 괴로울 때 슬쩍 기댈 언덕처럼 자리하며.


간호사로서 환자의 가장 생리적인 부분에 관여할 때면 도움을 제공하는 것은 스스럼없게 여기면서 (당연하겠지만) 거꾸로 내가 약해져 도움을 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병원에서 하는 모든 행위들은 사실 환자들이 수치심을 느낄만한 행위다. 아프거나 죽었을 때, 뒤처리를 타인이 해 줄 수밖에 없다는 진실은 생각만으로도 괴롭다. 대소변을 처리하는 것조차 남에게 맡겨야 하는 순간이 되면 나는 그걸 극복할 수 있을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존엄은 그런 1차적 욕구 충족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지만 그를 떠나서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덜 민망하시라고 실없는 소리를 덧붙인다. "병원에 오시니 별 걸 다해보죠?"하고. 순간의 불쾌가 전체를 지배하질 않길 바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때때로 딱 그 정도뿐인 것 같다.


수년 전 우리 병동에 입원했던 분이 재수술을 하게 되어 다시 입원을 했고, 나에게 아는 척을 해왔다. 그 순간 나는 간호사 1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배역이 된다. 며느리 삼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고, 그때 고마웠다고 말씀하시는데 괜히 쑥스럽고 겸연쩍었다. 당시에 병동 간호사들에게 답례하고파서 퇴원 후 외래진료를 보러 오시던 길에 그 먼 울산에서 서울까지 떡을 한 박스 가득 맞춰오셨었는데,  "뇌물이 아니라 정인데, 그냥 받아주지."라는 말씀에도 김영란법이 발의된 직후라 법무팀에서 엄하게 공지를 하여 너무 죄송하게도 못 받는다고 돌려보냈었다. 이번에 여쭈니 그때 가져간 떡은 가져올 때는 따뜻해서 말랑말랑했지만 진료가 모두 끝나고 집으로 가져가니 모두 굳어버려 처치곤란했다고 하신다.


사실 나는 모든 환자를 일일이 기억하진 못하고 이름도 잘 못 외워서 추상적으로 그런 분이 있었지 하곤 한다. 부끄럽지만 힘에 부칠 때면 사무적으로 일처리에 급급하기도 하다. 아아, 무심하기도 하지. 그럼에도 환자들은 난데없이 애정을 뿜으며 간호의 본질이 사람을 대하는 데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한다. 그 무거운 떡을 먼 길 기차 타고 오면서 낑낑거리며 이고 지고 온 사람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간호사에게 음료수라도 건네고자 하시는 환자나 보호자에게 "저희 공짜로 일하는 거 아니에요, 당연한 걸요. 안 챙겨주셔도 괜찮아요."라고 답하지만 그런 분들은 끝끝내 간호사의 주머니에 사탕이든 뭐든 쑤셔주신다. 돌아보면 그건 단지 주전부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간 얼마나 황송한 마음을 받았나.






온기: 따뜻한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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