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잔 날은 '몸이 이게 필요했어.'라고 합리화하면서도 하루를 망친 것 같은 죄책감이 더해져 약간 꿀꿀하다. 기분전환을 위해끈적한 재즈를 틀어놓고 비스퀵을 섞어 스콘처럼 구웠다. 별 맛은 없는데 초콜릿을 섞었더니 집안 가득 달콤하고 고소한 향이 퍼져 그럴싸해졌다.물이 절반 찬 컵을 보고 '반 잔 밖에 남지 않았네.'보다 '반 잔이나 남았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도록 되네이지만 막상 내 일에 관해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이런 때는 "나태 지옥"이라고 붉은 글씨를 커다랗게 휘갈긴 팻말이라도 걸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것은 기분이 든다.
'나의 것'이 없다는 것은 큰 콤플렉스다.나만이 잘할 수 있는 특출 난 재능이 없단 것이 스스로를 빈수레처럼 느끼게 한다. 휴식에 대한 나의 불안은 아마 그런 공허에서 나오나 보다. 글도외국어도 외모도 직업도 어중간한 나는 어설픈 재주는 없으니만 못하다고 말하곤 한다. 열매를 맺고 번식을 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측면에서 볼 때 꽃을 피우지 못해 결실을 이루지 못한 모든 것은 어느 시점에선 전부 무의미한 것이 것이 된다. 저마다 꽃의 형태나 개화시기가 다르다고 이야기한대도 끓는점까지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을 가진사람만이 그 말에 공감할 수 있을테니까.
TVN <뜻밖의 여정>에서 윤여정 배우의 미국 일정을 돕던 오랜 친구 김정자 씨는 윤여정의 오스카 수상이 우리가 나이와 상관없이 꿈을 꾸고 그걸 이룰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사실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채 성과를 거둔 사람의 이야기는 너무 많아 셀 수 조차 없고 종종 영웅화되어 매스컴에 등장하곤 하므로 또 다른 뻔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례가 더 특별히 희망적이라고 느껴진 건 나이가 들수록 편협과 안주의그림자가 깊어짐을 느끼는 탓일 것이다.
소설 <별빛 사윌 때>의 주인공 물참은 패망한 백제 사람인데, 정복당한 사비성을 두고 '백제 사람을 지켜주는 성이 아니라 거꾸로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이를 개인에게대입하면한 때 나를 버티게 했던 것이 현재 스스로의 한계점이 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 안의 흥망성쇠를 파악하고 스스로를 살릴 길을 모색하는 것. 요구되는 건 열린 마음으로세상을 탐색하고이를 탐구하는 꾸준한 자세.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바라는 건 거룩한계시가 아닌미미하고 미진해도나 스스로를 사랑하게 할 온전한 힘, '나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