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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집 Jul 05. 2023

아들의 방정리를 멈췄다.

14세와 40세의 기싸움




아들의 옷장과 책상정리를 멈춘 지 일주일 하고 삼일이 지났다. 부분의 엄마들이 그렇듯 공부하는 아이가 애잔하여, 잔소리하느니 정리해 주는 것이 훨씬 쉬우므로 닦고 치우고 개 주었다. 

이런 일은 커서 하면 되니 엄마가 해줄게. 이제 와서 누굴 탓하랴 신세한탄을 하면서도 며칠째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들, 제자리를 찾지 못한 이불과 가방들이 뒤엉켜는 방을 보고 있으면 감당 못할 화가 치밀었다.





"기본적인 정리도 안된 방에는 더 이상 엄마 노동력을 쓰지 않을 거."를 시작으로 몰아두었던 잔소리를 투척했다.

네 나이는 네 공 정도는 정돈할 수 있는 나이야.

집에서의 역할도 지켜줬으면 좋겠어.

학원도 줄였으니 그 정도의 시간과 마음은 있어.



늘 그렇듯 핵심마지막에 나온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영, 수 학원을 대형학원으로 다니며 전투적인 시간표에 몸을 맞춰가고 있었다. 시험이 없는 자유학기제에는 중1 아이들이 풀어지기 쉬우니 학습습관을 바짝 만들어줘야 한다는 유튜브, 맘카페, 육아서 등 풍월 덕이었다.



내 아이가 중학생이 된다니.



중딩맘이 된 엄마는 아이보다 더 비장해져 각종 정보를 모으느라 분주했다. 늘어난 학습량에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아이도 점점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매번 보는 영단어 시험 성적도 올랐고 밤늦도록 이어지는 수업과 주말수업에도 참여했다.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못하는 아이방을 보며 이제야 아이 안에 있던 승부욕이 발동나, 이렇게 치고 올라가나 내심 설렜다.





3개월 차, 여느 때처럼 학원 근처 식당에서 돈까스로 저녁을 때운다. 슥석슥석 이제는 돈까스도 잘 써네 기특하게 아이 손을 바라보는데 잠깐? 손 흰 부분이 남아있는 곳이 없었다. 얼마 전에 깎았나? 시선이 엄지손톱쯤으로 오자 괴상하게 우굴거리는 아이의 손톱이 눈에 띈다. 



조갑이영양증



평소 자신도 모르게 손 주변을 뜯던 버릇이 손톱을 만들어내는 곳에 염증을 일으켜 손톱모양이 변했단다. 아이의 불안도가 높으면 더 심해진다고 한다. 그 맘즈음 다른 학원에서는 전화가 왔다. 학원에서 아이가 존다고 했다. 주말에는 오후까지 늘어진 잠을 자고 학원가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 학원에 갔다. 학원 스케줄 외에는 어떤 것도 소화할 수 없는 상태의 아이가 되었다.




학군지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는 그때 학원을 쉴 수밖에 없었다. 본인의 때가 아닌 때, 떠밀리듯 따라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계속 이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시험 없을 때 여유를 갖고 진로 탐색하며 내적동기를 찾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낭만적인 계산이 있었다. 







눈에서 치우려고 학원비를 낸다는 우스갯소리를 심오한 지혜로 받아들이게 된다.

초1 동생의 학원 라이딩을 마치고 돌아오면 잠에서 황급히 아이 마주하는 날이 늘었다. 그마저도 이젠 깨지도 않는. 자기주도학습, 완전학습을 꿈꾸며 사둔 문제집에는 먼지가 쌓여갔고 수십 마리 용이 활개 치는 판타지 소설을 새벽까지 읽어댔. (아, 유튜브와 게임도 물론 늘었고)

내뱉지 못한 마음의 곡소리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공부도 안 하는 게 잠이 네.

공부도 안 하는 게 간식은 꼬박 챙겨 먹네.

공부도 안 하는 게 게임, TV는 줄이지도 않네.

부도 안 하면서 방까지 더럽네.

아! 한탄스러운 나의 노동력.




대의는 꽤 그럴싸했지만 10대 남자아이라면 쉽지 않을 방 정리를 갑자기 요구하게 된 의식의 흐름은 이러했다. 공부에 뒤쳐지고 있다는 불안은 아이가 빈둥대고 있다는 시선으로, 아이의 풀어짐은 전업주부의 성과처럼 느껴져 사춘기 아이 못지않게 감정이 널뛰었다. 며칠째 이어지는 기싸움. 치워줄까 하는 마음과 선전포고 했으니 생활습관만이라도(공부는 손을 떠나가니) 잡아보자는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며칠째 아이는 미동도 다. 그사이 눌어붙은 떡접시 음료수 캔, 과자봉지까지 늘었다. 다 잘 참아냈는데 이틀 전 신었던 양말 살짝 위험했다.

환기 정도만 해주고 기다리기로 한다. 아이는 오히려 흐트러짐 속에서 편안해 보이는 듯도 하니 연하게 방문을 닫는다. 



가끔 통찰력을 발휘하는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잊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참는 거면 그냥 치워줘. 에라이.




해도 티 안 나고 미루면 티 나는 집안일을 십수 년 하다 보니 일이 힘들다기보단 종종 이 일들이 너무 작고 하찮게 느껴져 벅찰 때가 있다. 그럼에도 마음을 다잡는 데에는 밖에서 돌아올 식구들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




요일별 정해진 루틴대로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가 모이면 옷을 개고  욕실 줄눈을 닦고 묵힐 옷에 좀약을 넣어둔다. 결혼 전에는 예상도 못한 사소한 일들에 힘을 쓰며 지내왔다. 그 마음에 대한 아이의 대답이 점점 매서워진다.




되도록 아이 방문은 열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쉽지만 빨래가 다되어 오늘은 들어가야만 한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뒹구는 쓰레기 앞에서 최대한 무심하게 잔소리 투척. 더 무심히 지나치는 아이. 엄마의 언짢음 따위에는 무신경해도 되는 14세. 본전생각과 아이와의 거리가 필요한 40세. 두 조합이 얼마나 더 다투려나 생각하니 까마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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