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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더 깊게 우러나오는 마음

2. '차'를 사랑해보기

by 구미래

스무 살 무렵, 마음이 잘 맞는 언니와 함께 작업실을 꾸린 적이 있었다. “아지트 갖고싶다.” 이 한 문장으로 뚝딱뚝딱 만들어진 집이었다.


어느 가을, 우리는 해방촌의 옥상을 올랐고, 한 루프탑 카페에서 나란히 누워 여러 옥상들을 바라보았다. 해가 기울며 핑크빛 노을이 지고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시간이었다. 흔한 초록빛 방수 페인트가 칠해진 옥상 위로는 빨래줄이 걸려 있었고 어디선가 삼겹살 굽는 냄새가 느릿하게 퍼지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마주하는 풍경들이 왠지 낯설고 신기했다. 아주 일상적이었지만, 우리 눈에는 그것들이 낭만적으로 보였다. “아, 저기서 카페 차리고 싶다.” “옥상에서 살면 어떨 것 같아?” “저기서 노래부르면 여기까지 들리겠지?” “월세 얼마일까?” 하는 실없는 수다를 떨었지만 마치 우리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속에 들어와있는 것 같았다. 어떤 이야기가 시작될 것만 같은 기분. 영화처럼 이전과 다른 삶이 펼쳐지게 될 것이라는 묘한 감각. 우리는 동시에 작고 허름한 공간이라도 우리의 감성대로 가꿔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고, 그렇게 피터팬의 집 구하기 카페를 뒤졌다.


당시 언니는 퇴직금으로 받은 500만 원이 있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십 분 거리에 있는 동네의 반지하 공간을 발견했다. 보증금도 딱 500만원이었다. 화면 속 24평 남짓한 공간에는 운동기구가 가득 차 있었지만, 우리의 손길이 닿으면 전혀 다른 공간이 될 것만 같았다. 직접 가서 본 공간도 나쁘지 않았다. 해방촌, 그로부터 일주일 뒤, 이 모든 것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인 우리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제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보다는 매일 갈 곳이 있다는 것, 우리가 당연하게 만난다는 사실이 참 기뻤다. 우리는 함께 우비를 입고, 흰색 페인트를 벽에 칠하고, 소파와 빔프로젝트를 들이고, 무지개 모양의 조명이나 거대한 화이트보드를 끌고 와 그 위에 우리들의 이름을 썼다. 서로의 친구를 만났다.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눴다. 이 과정 하나하나가 청춘이고 낭만이었다. 낭만에는 무서운 힘이 있고, 그 힘에 우리는 이끌려버린 것이다.


그곳에서 언니는 나를 키우다시피 했다. 언니의 가족 역시 내 가족이 되어갔다. 겨울이 되면 히터 앞에서 기타를 튕기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겨울 드라마를 정주행하며 추위를 잊었다. 보통 영화를 고를 땐 ‘혼자라면 죽어도 안 볼 것’이 기준이 됐다. 영화를 틀면 누군가 말꼬를 틀어 정지버튼을 누르기 일쑤였고, 영화에 집중하는 시간보다 영화에 대해 떠드는 시간이 더 길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영하의 날씨에도 자전거를 탔다. 헤드폰으로 왕가위 영화 OST 플레이리스트를 틀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처음엔 둘다 음악을 만들고 싶어했지만, 음악이야기보다는 인생에 대해, 노가리까는 시간이 늘어났으며 어느 순간부터 언니는 차(車)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언니가 음악보다 차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나는 언니보다 더 일찍 깨달았다.


어느 새벽 언니는 모니터로 차 강의를 듣고 있었다. 졸린 눈으로 반쯤 떠 본 모니터 속 글자들이 기억도 나지 않지만 “세상에 차가 저렇게 많나.” "저게 대체 뭐지?" 라는 생각이 전부였던 것 같다. 언니의 밤샘 공부는 자격증을 따기 위함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함도 아니었다. 그저 호기심에서 비롯된 몰입이었다. 필기하는 언니의 모습을 보며, ‘언니는 정말 차에 진심이구나. 멋지다.’라고 생각했다. 내 생일도 아무 날도 아닌 날에 언니는 해외 직구로 주문해서 한달이나 걸렸다는 첨언과 함께 쿠스미 티 틴케이스 세트를 집 가는 길에 들려줬다. 케이스는 정말 예뻤지만 냄새를 맡아보니 이상한 화장품맛이 나는 것 같았다. 마셔보니 더 그랬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차들은 여전히 뜯어보기만 한 채 찻장에 전시되어있다. (유통기한이 지났어도 언젠가 꼭 다시 시도해볼 것이다.)


그 시절 언니는 보이차를 물 대신 마셨다. 식탁을 펴고 신문지처럼 포장된 둥근 보이차를 조심스럽게 꺼내 다도 잔에 따라마시면서 나에게도 따라줬다. 첫 모금에서 나는 거의 뱉을 뻔했다. 뱉었나? 솔직히 말하자면, 신문지 맛 같았다. 그래도 나머지는 약처럼, 물처럼 꿀꺽 삼켰다. 언니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며 나를 이해해줬다. 하지만 이런 차를 왜 마시지? 세상에 얼마나 맛있는 것들이 많은데! 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 차들이 나에게 위로가 될 날이 올 줄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독립 매거진을 읽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거기에는 온갖 취미에 진심인 사람들,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사람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학교처럼 평일이면 종이잡지 클럽에 다녔고, 그곳의 모임 호스트가 되어 나의 스크랩북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매거진에서인가 양다솔 작가가 유명해지기 전, 자신의 보이차 라이프에 대해 인터뷰한 글을 읽었다. 그는 매번 어디를 가도 보온병에 보이차를 담아 다녔고, 밥을 굶어도 보이차는 마셔야 한다고 열변했다. 그 글을 읽으며, 문득 언니가 내어주던 보이차가 떠올랐다. 언니가 얼마나 나를 소중하게 여겼는지, 그 차 한 잔에 얼마나 많은 마음이 담겨 있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나도 보이차를 좋아하게 될까? 어쩌면 학습하고, 좋아하기로 마음먹으면 정말 좋아하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점점 차에 스며들었다. 아니, 길들여진 것일지도.


더 어른이 된 나는 시간이 나면 찻집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찻집 특유의 풍경이 좋았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마음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차를 마시는 동안만큼은 어떤 것도 조급할 필요가 없었다. 한옥 느낌의 경복궁 근처 찻집들이나 통창 밖으로 풀과 나무가 흔들리는 찻집들이나 어디를 가든 각각의 개성대로 꾸며져있었다. 언젠가 꼭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나는 네이버 지도에서 ‘찻집’ 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고 모든 곳에 별 표시를 했다. 지도를 펴면 가득찬 별들을 따라 모험을 떠났다.그러다 할머니 댁 근처에 ‘웅차’라는 찻집이 생겼을 때, 나는 단골이 되었다. 가끔은 잠옷 차림에 자켓만 걸치고 갈 때도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런 날이면 텅 비어 있던 매장에 손님이 가득 들어찼다. 마치 조용한 도서관에 혼자 남아 있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부끄럽지만 찻집이 그만큼 내 집처럼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웅차의 문을 열면 은은한 차 향이 먼저 스며들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의 Ost가 스피커로 재생되고 있었고, 한쪽에 시집들이 잔뜩 쌓여있는 광경 속에서 언제나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처음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너무 반가웠는데 이것이 플레이리스트라는 걸 깨닫고 나서 같은 곡이 반복되는 지점마다 조금 거슬려지기도 했다. 보통날의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았다. 창가 쪽에 놓인 바 테이블, 빛이 적당히 스며드는 자리. 메뉴판을 보지 않아도 무엇을 마실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말차, 혹은 눈에 띄는 이름의 차 한 잔. 가끔은 새로운 차를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말차로 돌아왔다. 마치 익숙한 안식처를 찾는 기분이었다. 한 손으로 찻잔을 쥐고 거품기같은 도구로 차를 마구 휘젓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젠가 찻집의 주인이 되는 소망을 품었다.


그곳에서 나는 책을 읽기도 하고, 노트를 꺼내 끄적이기도 했으며, 거대한 아이패드를 꺼내 작업을 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은 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창밖을 바라보는 날도 있었다. 손끝부터 서서히 따뜻해지는 감각이 마음까지 번지는 것 같았다. 찻집에선 종종 원데이클래스가 열렸는데, “이 차는 ㅇㅇ시대의 ㅇㅇ가 즐겨먹던 차예요. 유래는~”의 설명에 자연스럽게 귀가 쫑긋해졌다. 다른 설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보이차는 시간과 함께 변하는 차라고, 오래 묵힐수록 깊어지는 맛이 있다고 했던 말만큼은 생생했다. 그리고 언니가 처음 보이차를 내어주던 날이 떠올랐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신문지를 씹는 듯한 맛에 얼굴을 찌푸렸는데, 어느새 나는 이 떫고 쌉싸래한 차에 길들여져 있었다. 변한 것은 보이차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그 시간 속에서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어느 순간부터 귀동냥으로 배운 차의 세계가 점점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단것을 좋아하면서도 차만큼은 단맛 없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여러 브랜드의 가향 차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색다른 향들을 내멋대로 블랜딩하기 시작했다. 홍차를 마시다 카카오닙스를 살짝 첨가해 한번 더 우려내면 더 깊은, 은근히 달콤한, 묘한 맛이 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렇게 내 취향이 서서히 형태를 갖추어 갔다.


내 공간이 생긴 후부터 차는 일상이 되었다. 당연하듯이 내 곁에 자리했다. 반신욕기 안에서 매일 차를 내려 마시는 것이 하루의 한 과정이 되었다. 따뜻한 증기가 피부에 스미고, 향이 피어오르는 순간들. 처음엔 기호품이라 여겼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이 모든 행위를 사랑하고 있었다. 물욕이 많았던 내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소유에 대한 갈망을 비워내는 것을 느꼈다. 필요한 것만 두고 불필요한 것은 덜어내는 삶. 어린 시절 내가 가지고 싶었던 아이맥이나 이북리더기, 헤드폰 등을 이미 다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는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 경험을 모으기로 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상하이를 경유했을 때 나는 캐리어 가득 중국 차를 채워 돌아왔다. 한자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면서 겹치지 않게 다양한 차들을 담았고,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얼마 전엔 날을 잡고 집에서 차를 소분하며 가족들과 고급 문화 향유 놀이를 벌였다. “고급 시민이 되려면 이거 다 마셔야해!” 하며 차 맛을 구별하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보이차부터 백차, 녹차, 홍차를 번갈아 시음하게 했다. 사실은 내가 자연스레 익히고 싶었던 교양에 적응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차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던 둘째 동생은 보이차를 한입 마신 뒤 “나 저급 시민할래!” 소리 지르며 도망갔고 할머니는 배부르다며 이제 그만 좀 하라고 말렸다. 나도 못 배워서인지 어디서 멈춰야하는지 가늠이 안갔다. 어디가서는 교양 없는 나인데 집에서만큼은 가장 교양있는 축에 속한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 절망스럽게 만들었다. 우리집은 교양을 이렇게 고되게 배워야한다니…하는 서러움과 동시에 이까짓게 교양일까? 라는 생각도 스쳤다.


보이차는 브랜드와 연도에 따라 맛이 다르다던데, 정말일까? 다 똑같은 맛인데 사기치는 거 아닐까? 보이차도, 대홍포도, 동방미인도, 정산소종도, 솔직히 다 거기서 거기 같았다. 철관음차는 마음에 들었지만 예전에 즐겨 마시던 메밀차 티백이나 수국차 티백이 조금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눈 감고도 와인의 년도를 구분한다는 말이 세상 제일 가는 거짓말 같았는데, 차는 더 이상한 영역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차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대쇼츠 시대에 굳이, 굳이 음료가 아니라, 귀찮은 과정을 거치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우려 마시는 그 일련의 과정이 낭만적으로 느껴진달까. 지적 허영 같기도 하지만, 나는 이렇게라도 나를 지연시키고, 지연시킬 수만 있다면 좋다. 내 혀는 여전히 콜라나 슈크림 라떼 같은 강렬한 단맛에 반응할 것이고, 차를 마시지 않는 매순간엔 인스턴트의 유혹에 절여지겠지만. 나는 차를 마시는 잠시나마 몸에 좋은 것으로 나를 꾸려 나가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어차피 다음 날 샤워하면 다 씻겨 내려갈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굳이 바디로션을 바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일상의 많은 것들이 다 ‘굳이’니까.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면서 느꼈다. 인생은 의미 부여의 연속이라는 것. 그러니 별거 아닌 것들을 별것처럼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무너질 것을 알기에. 어떤 하나가 의미 없다고 느끼는 순간 (의미의 바깥으로 나가버리는 순간) 인생 역시도 별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게 나는 왜 살지?) 그러니 나는 계속해 차마시기 같은 무의미를 기쁘게 여기고 싶다. 솔직히 의미를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누군가는 차에 돈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는 걸 한심하게 여긴다. 아마 나도, 아주 가끔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차를 소분하면서 할머니와 동생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은 참 행복했고, 나는 종종 엄마와 함께 차를 나눠 마시는 오후 네시를 기다렸다. 앞으로도 눈을 뜨면 생각 없이 커피포트의 버튼을 누르러 갈 것이다. 이상하게 차를 내리면 책이 읽고 싶고, 차를 마시다 보면 스트레칭이 하고 싶고, 그날은 마스크팩을 붙이고 바디로션을 바르고 싶어지더라고. 하루가 이렇게 나를 위한 습관들로 채워지면 꼭 내 영혼이 충만해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차를 더 좋아하고 싶다. 좋아하는 건 학습의 영역이니까! 습관처럼 좋아해야지. 아니, 더 자주 더 많이 좋아한다고 말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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