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세탁은 넬리 세제, 세안과 세신은 비누와 닥터브로너스, 설거지는 친환경 국가 인증받은 친환경 세제를 마치 공식처럼 사용했다. 부드러운 기존 세제와 달리 사용감은 거칠지만 특유의 투박스러움에 길들여져 갔다. 그러다 남아있는 플라스틱 용기가 계속해 눈에 거슬렸다. 세제 자체는 친환경일지 모르나 분리수거를 기다리는 커다란 플라스틱 통이 덩그러니 남아 마음을 짓눌렀다. 용기마저 썩거나 사라질 수 있는 소재면 얼마나 좋을까.
소프넛을 구입한 까닭이다. 거품을 내고 세제처럼 사용 가능한 이 열매를 알게 된 것은 2년 전 즈음이었다. 열매가 세정력을 내면 얼마나 내겠냐는 의구심에 1년가량을 지켜보았고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많은 상점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후기들을 보고는 구입해야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남아있는 세탁 세제를 다 사용하면 소프넛으로 꼭 바꿔야지 곱씹었던 세월이 1년이었다. 아직 약간의 설거지 세제와 닥터브로너스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사용해보고 싶은 마음을 2년 가까이 눌렀으면 이 정도 보상은 괜찮지 않나 스스로를 설득했다. 물론 세탁 세제가 당장 필요하다는데 가장 큰 이유가 있었지만.
소프넛은 1kg에 1만 8천 원 내외인 데다 여러 번 재사용도 가능하다는 경제적 이점이 있다. 친환경 제품이라고 예산을 뛰어넘는 제품을 살 때면 손가락이 후들거려 얼마나 서글펐던가! 그에 반해 이렇게나 합리적인 가격이다! 거기에 친환경, 유기농 재배 상품이라 농약 걱정도 덜하다. 플라스틱 용기 대신 곱게 둘러싼 면 주머니는 시장에 장을 보러 갈 때 비닐포장지 대신 야채 바구니로 사용하거나 빵집에서 빵을 담을 때 요긴하기까지 하다.
배송된 택배 상자를 봄날 햇볕 아래에서 신나게 열었다. 씨실과 날실이 엮어 만든 천 사이로 시큼한 냄새가 난다. 크기는 도토리보다 조금 크나 껍질은 더 투명하다. 그것을 물속에 넣어 끓이거나 불리면 몽글몽글한 거품이 난다고 한다. 설명서를 보고 1리터의 물에 알맹이 15개 정도를 넣어 20분가량 끓여 식혔다.
소프넛 거품은 세정력이 생각보다 우수해 빨래는 물론 욕실 청소, 세신, 설거지 모두 가능하다고 한다. 아직 설거지하는데만 사용해봤다. 몸도 씻고 화장실도 닦고 빨래도 빨야 봐야 이 조약 같은 알맹이의 장점과 단점, 개선법을 알 수 있을 테다. 다만 느림보처럼 느린 나라서 온라인에 먼저 검색해본다. 역시나 발 빠른 이들이 지천에서 소프넛을 먼저 사용하고 있다. 작은 움직임들을 계속해서 실천하는 그들의 소프넛 사용기에서 제로 웨이스트, 친환경, 미니멀 라이프 등의 키워드를 찾았다. 소박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돈의 측면에서는 기존의 합성 세제가 기업의 입장에서도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경제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프넛같은 친환경 물건들이 판매되고 구매됨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환경을 생각하고 소비 습관을 반성하는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자본주의 시장 체재 아래에서 생산품과 소비품의 범주가 확장됨을 의미한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작은 걸들을 함으로써 세상은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