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 32살이니, 4년 전이겠네요. 6cm보다 조금 큰 자궁 근종을 발견했을 때가. 그리고 4년이 흘렀습니다. 건강을 위해 식습관을 바꾸고 환경을 위해 생활 습관을 바꾸었습니다. 완성형은 아니고 현재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비록 지향하는 인생관이 생겼다 하더라도 저도 사람인지라 플라스틱 팩에 들어있는 간편식을 지익하고 찢어 먹는 편리함을 택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면 마음속 거울에 스스로를 비쳐보고 뜨끔합니다.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가치관이 생기면 누구나 자연적으로 규칙이란 게 마련되고 규칙에 어긋나는 상황을 맞이하면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느끼잖아요. 인간과 자연에 가능한 이로운 행동을 하자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매 순간이 선택의 기로에 있어요. 다시 말하면, 매 순간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마주하며 살아간다는 의미예요.
물론 철저한 규율을 바탕으로 꿀까지 먹지 않는 비건도 아니고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처럼 혁명적인 일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작은 선택들을 반복할 뿐입니다. 플라스틱과 쓰레기를 줄이고 지역 농산물을 이용하려 하죠. 저의 선택들은 앞서 말한 이들처럼 이상에 가깝지는 않지만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고다에 모여 개인이 가지는 작은 기회를 발언하는 것으로 사회를 구축하고 변화시킨 그리스, 로마 사람들처럼 우리는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받는 사회에 살며 그 행동들이 세상을 바꾸는 실제 사건들을 많이 목격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매일 쓰는 샴푸를 머리 감기용 비누로 교체하는 데에는 크게 부담감이 없었습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였습니다.
첫 번째로는 샴푸에 함유되어 있는 성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부정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판매하는 샴푸에는 합성 계면 활성제와 파라벤, 실리콘, 설페이드, 디메치콘, 향료 등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합성 계면 활성제인 소디움우릴설페이드, 소디움우릴설페이트는 피부에 잔류하여 트러블을 일으키기도 하고 인체에 축적될 경우 유전자 변형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파라벤은 방부제 성분으로 대표적인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악명 높은 성분이죠. 파라벤을 대체하려 사용되는 페녹시 에탄올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학 회사의 로비 때문일지, 아니면 정말 성분의 안정성이 불확실하기 때문인지 정확한 답은 알기 어렵지만 샴푸에 사용되는 많은 성분들의 안정성은 아직 뜨거운 감자로 논란 중이죠.
두 번째로는 샴푸를 사용할 때 발생되는 환경 문제 때문입니다. 인공 계면 활성제를 분해하지 않고 강에 방출한 탓에 마치 영화처럼 거품 강이 흐르는 인도의 사진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비행기로 10시간을 날아가지 않아도, 집 근처에 있는 낙동강 하류에만 가면 거품이 뽀글뽀글 남아있는 경우가 종종 보입니다. 충격적인 장면들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상수도사업소에서 물을 정수해서 공급하겠지만 이렇게 오염된 물을 마시고 사용한다 생각하니 아찔하더군요.
샴푸를 사용하고 난 후 남은 플라스틱 공병이 불편한 이유도 이와 관련있습니다. 대부분의 샴푸통이 그러하듯 유색 플라스틱 통은 그 가치가 낮아 재활용률도 유독 낮습니다. 특히 샴푸를 펌핑할 때 사용되는 펌프는 플라스틱과 철 스프링이 결합되어 제조되는데 가정에서는 쉽게 분리하지 못해 정확한 분리 배출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니 저에겐 적어도 1-2개월에 1통씩은 소비하는 샴푸를 이왕이면 나와 지구에 건강한 대체제로 전환하고자 하는 시도는 필수불가결이었습니다. 오늘은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혹은 관심이 있는 분들과 나누고 싶어 샴푸를 대체할 샴푸바 혹은 물비누를 사용한 지극히 개인적인 후기를 이야기할까 합니다.
코코넛 오일에 칼륨을 반응시킨 천연 계면 활성제를 사용한 물비누입니다. 화학계 계면활성제도 사용하지 않기로 유명해 샴푸뿐 아니라 세신, 욕실 청소, 설거지 하는데 까지 사용해봤어요. 미국에선 유기농 인증과 비건 인증 등을 받아 바디 로션과 헤어크림까지 구입해 사용한 브랜드입니다.
머리를 감았을 때의 결과는 제가 사용한 모든 제품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워요. 젖은 머리칼을 말리고도 엉킴이 없습니다. 일반 샴푸를 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두피 간지럼이나 건조함도 없고요. 이런 친환경 제품이 950ml 용량에 약 2만 5천원 가격마저 현실적입니다. 남편과 제가 설거지 같은 다용도로 활용하지 않고 세신과 머리 감기용으로만 사용했을 때, 2개월정도 사용 가능했어요.
다만 플라스틱 용기와 펌프를 쓰레기로 배출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어요. (아, 용기에 붙여진 라벨은 깔끔하게 떼어집니다.)
저의 첫 샴푸바였습니다. 이 제품을 쓰고 샴푸바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으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어요. 플라스틱 용기도 나오지 않고 대부분의 샴푸바가 그러하듯 ph5.5의 약산성입니다. 물론 화학 계면활성제를 비롯한 화학 보존제 등을 사용하지 않았어요. 이 제품은 사용 후에 빛을 발했습니다. 저는 머리가 길고 모발이 두꺼우며 숱이 많은 지성형 두피라 쉽게 기름지고 금방 간지러웠어요. 그래서 하루에 한 번 머리를 감지 않으면 냄새도 났고 간지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제품을 사용하고 모발을 건조하면 첫 번째로는 두피가 굉장히 시원했어요. 무엇보다 이틀이 지나서 머리를 감아도 두피가 기름지거나 건조하지 않아 간지럼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샴푸바 하나를 쓰면 플라스틱 용기 2개를 줄이는 효과라고 홈페이지에서 홍보하기는 하지만 머리가 허리까지 오는 저로서는 한 개의 샴푸바를 사용하는데 3주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100% 자연 유래 성분으로 제작됐다는 상세 설명서를 보고 사용했습니다. 가격은 순상고 클래식보다 약 3천 원가량이 비싸요. 그래서일까요. 자연 유래 성분으로만 만들었다는데 생각보다 거품이 많이 나와 놀랐습니다. 계면활성제도 코코넛 오일에서 추출한 소듐코코일애플아미노산과 같은 천연 유래 성분을 사용했습니다. 구연산을 사용하지 않는 날도 머리칼이 꽤나 부드럽게 잘 빗겨진 기억이 좋게 남아있습니다. 순상고처럼 사용감이 시원하진 않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용이 편리해서 편하게 손이 갔던 제품이었어요.
목적은 좋으나 방법이 너무 불편하면 목표까지 도달하는데 어려운 경우가 더러 있죠. 소프넛으로 머리 감기가 그중 하나인 듯합니다. 소프넛 농축액이나 열매를 따뜻한 물에 우린 후 두피와 모발을 마사지하는 형식입니다. 일단 거품이 너무 나지 않아 머리를 감고 있는지 의뭉스럽습니다. 노푸하는 기분이랄까요. 거기에 구연산으로 머리를 헹궈도 저는 뻣뻣한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 소프넛은 세탁과 설거지용으로 최적이란 생각입니다.
샴푸바를 사용하면서 가장 써보고 싶은 브랜드가 러쉬였습니다. 지구에 이로운 행보를 한다는 브랜드 이미지 때문이었습니다. 동물 실험을 안 하고 최소한의 포장과 최소한의 화학원료를 사용하여 핸드메이드로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을 상상해보세요! 코코넛 라이스 케이크는 안타깝게도 비건 제품으로 아직 인정받지 못했고 베지테리언 소사이어티의 인증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응대해주시는 직원분이 지성 두피, 모발용으로 추천해주셨어요. 몬탈바놀을 써볼까 하다가 개인적으로 코코넛 향을 좋아해서 선택했습니다. 용량은 제가 써본 샴푸바 중에서 가장 적은 55g이지만 가격은 1만 8천 원으로 가장 비쌉니다.
러쉬에 대한 기대감이 커서 일가요. 사실, 앞서 사용한 샴푸바에 비해 사용감에서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감고 나면 머리가 이상하게 많이 간지러웠어요. 설페이트 계열의 소듐코코-설페이트 합성 계면 활성제가 함유된 까닭일까요. 그래서 손이 잘 안 가는 제품이었어요. 덕분에 구매한 지 수개월이 지난 지금 가지도 사용을 중단한 비누 덩어리가 욕실에 남아있어요.
샴푸바는 샴푸의 부드러움을 대체할 순 없습니다. 상품에 따라 사용감도 많이 달라 머리를 감고 나서도 뻑뻑한 날들이 있어요. 또, 구연산으로 머리를 헹구기 귀찮은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플라스틱 통을 쭉 자면 나오는 풍성한 거거품이 매우 편리함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샴푸바를 사용하게 되는 까닭은 분명 많습니다.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장점만 살펴볼게요. 샴푸와 린스를 사용했을 때는 피부에 남이있는 잔여물이 모공을 막아 피부 트러블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에 반해 샴푸바와 구연산은 잔여물이 남아있지 않아 흔히 말하는 등드름이 사라졌습니다. 매번 나오는 플라스틱 용기를 헹구고 말려 분리배출하는 귀찮음도 없습니다. 향기로운 냄새는 나지 않으나 윤기 있고 튼튼한 머리칼을 얻을 수 있어요. 영화 속 여주인공이 무슨 샴푸 쓰냐는 물음에 '비누로 머리 감는데?'라는 환상 가득한 답변을 '풋'하고 비웃을 수 있는 것은 덤입니다. 저처럼 샴푸바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많으니 다양한 코스메틱 브랜드에서 앞다퉈 샴푸바를 출시하겠지요.
장담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편견도 내려 놓고 샴푸바를 한번 써보세요. 분명 단점보다 큰 장점들을 발견하게 될 거에요. 혹은, 추천해주실만한 샴푸바가 또 있다면 공유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