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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룡이 Apr 13. 2020

치약을 만들고 낭만을 담아요

'너도 참 유난이다.' 


저희 어머니는 저에게 가끔은 저렇게 말씀하세요. 자궁근종을 가졌을 때부터 채식을 하고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에 영향을 덜 주고 덜 받길 추구하는 행동들을 볼 때마다 '쟤는 요즘애 답지 않게 왜 저럴까' 생각하시나 봐요. 그럼에도 좋습니다. 감히 찬양합니다. 철학이 있는 삶을

상추는 기르지만 아파트에 사는 도시인이랍니다





낭만과 철학 즈음에서 제로 웨이스트


거창하게 철학으로 표현했던 그 관념, 좌우명이나 인생관, 지향점으로 대치 수 있겠지만 저는 누구나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사는 낭만으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저에게 간소한 삶은 그런 류입니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즐겁게 행동하면서 저의 습관과 행동을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켜주는 원동력입니다.


제로 웨이스트라는 낭만은 저에게 쓰레기 배출량을 0으로 줄이자는 이상적인 슬로건보다는 '낭비를 없애자'에 가깝습니다. 필요 이상이라고 느끼는 것들이 하나씩 늘고 그것들을 하나씩 줄이며 살고 싶어요. 아직 마침표가 찍히지 않은 미완의 철학과 두드리고 다듬어야 하는 거친 생각들을 하고 살지만 이 덕분에 지향하는 방향성이 있는 삶에 가치를 느낍니다. 망망대해에서 갈피를 못 잡고 떠다니는 난파선이 아니라 북극성을 쫒으며 대륙을 발견하는 선원의 희망찬 마음과 닮아갑니다. 그렇게 생각이 다듬어지고 마음이 향하고 손 닿고 발길이 머무는 행동들에 의미를 찾습니다.



부조화? 나는 나로 살아갑니다.


낭비 없이, 간소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도시인임에도 때로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합니다.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주관적 범주에서 부조화를 경험할 때가 그렇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말끔한 일상을 삶으로 확장시키기엔 소비를 줄여야 하는데 시간이라는 가장 중요한 재원이 부족하여 소비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과연 간소한 삶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물로 머리를 감고 치약과 칫솔을 쓰지 않는, 가진 옷이 10장도 되지 않는 궁극의 미니멀리스트들도 많은데 나는 틀린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덕분에 더 분발하게 되는 듯합니다. 나와 다른 이들의 생활 방식을 비교해보고 영감은 얻되 지배당하지 않으려 합니다. 저는 일상의 약 80%를 집에서 보내는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고 초고속망으로 엿본 다른 이들의 생활은 다른 이들의 생활임을 망각하면 안 됩니다. 나는 나로서 존재합니다. 대체 가능한 친환경 제품을 구입할 여력이 된다면 망설이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사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친환경 제품에 대한 시장이 커지고 소비자로서도 더 많은 선택지를 향유할 수 있는 생태계가 시장에 생겨납니다.


여전히 플라스틱 칫솔을 쓰고 있지만 치약을 만들어 쓰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작년 초에 묶음으로 구매한 칫솔이 여전히 남아있기도 하지만 아직 100% 생분해되는 칫솔모가 시중에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칫솔 대만 대나무이고 칫솔모는 여전히 플라스틱이니 저의 기준에서 대체 가능한 상품이란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치약은 대체 가능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성분이야 법적으로 모든 치약이 전성분을 공개해야 하고 식약청에서도 관리 감독에 애쓰니 성분 문제야 자유롭습니다. 작은 모니터에 몇 글자 입력만 해도 성분의 탄생부터 사용 용도, 잠재적 가능성까지 들쳐볼 수 있는 깨끗하리만큼 투명한 세상에서 이 자그마하고 가벼운 플라스틱과 멀어지는 방법 역시나 쉽게 접근 가능하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치약 용기는 안타깝게도 분리 수거가 되어도 재활용되는 비중이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막 만든 치약


치약은 원재료만 소비하고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보이는 쉬운 제조법을 참고하여 저울에 정확한 무게를 개량하지도 않고 큰 테이블 스푼과 작은 테이블 스푼으로 대충 넣어 만들어요. 바쁜 도시인에게 정확한 계량은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리곤 닦아둔 유리 용기를 찬장에서 꺼내어 만들어둔 치약을 넣어두었습니다.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이 오래된 유리 용기에 대략 1주일치 사용분을 만들어 놓고 떨어지면 다시 만들어 사용하면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쓰레기를 버려도 가능한만큼 깨끗하게


맞아요. 저는 쓰레기를 적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쓰레기를 만들고 있어요.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일을 하면서 쓰레기를 아예 배출하지 않는 생활을 한다는 건 마치 이슬만 먹고사는 동화 속 요정 이야기예요. 살아있는 생명체로써 저는 폐기물을 배설할 수 밖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어제보다 오늘 '더 적게', '더 효율적으로' 소비하려 애쓰고 있어요. 완벽하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느리지만 꾸준히 나아지는 것,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고 옳은 방향으로 순회하는 노력이 더욱 가치 있다고 느끼는 요즘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가지는 각자의 철학이란 게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명확한 기준으로 운영되지 않는 주관적 문제이니 오롯이 저의 즐거움이겠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최고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단점 없는 완벽한 선택지란 불가능하니까요. 


일단, 앞발에 차이는 돌멩이들을 하나씩 없애고 있는 중입니다.

덜쓰고 잘쓰기- 일단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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