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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룡이 Jun 21. 2021

여름의 맛

5월 말부터 마음이 설레기 시작해 6월이면 본격적으로 음미할 준비를 한다. 


여름의 맛을. 


양 손에 이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작고 부드럽지만 아삭한 것들을 쥐고 아직은 튼튼한 이로 와그작 베어 물면 입안 가득 퍼지는 과즙과 채즙이 퍼진다. 내리쬐는 햇살이 점차 강렬해지는 시절이라 말라가는 목구멍을 그 작은 것들이 품고 있던 물기로 적신다. 입술을 시작으로 혓바닥과 목구멍으로 시고 달고 짭조름한 과즙과 채즙이 굴러 넘어갈 때, 생각한다. 



드디어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여름이 왔구나!



계절이 지나도록 나는 여름을 그리워한다. 뜨거운 햇살과 따가운 모래, 시원한 밤공기, 그리고 그 중심엔 여름의 맛들이 있다. 아마 꽂힐 듯 날아오는 빛을 두려움 없이 품고 영그는 가지, 토마토, 수박, 옥수수, 참외, 자두, 복숭아 등이 나의 온몸 가득 에너지를 전해주기 때문은 아닐까. 그 에너지들이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나에게 처얼썩- 달라붙어 스며드는 기분이다. 




계절에 맞는 식재료를 먹기를 중요시하는 <마크로비오틱>에서는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는 결국 나에게 지금 필요한 에너지를 대지에서 얻는 것과 동일하다고 여긴다. 입안에 들어온 음식을 이로 씹고 혀로 삼키면서 나의 살과 뼈를 만든다. 이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만드는 가장 원초적이면서 일차적인 힘이 아닐까. 



영양분 이야기를 제쳐두고 말해도 '밥먹는 시간'은 많은 것들을 함축한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짧고 단편적인 장면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누구와 밥을 먹으며 어떤 이야기를 하고, 그때 들려온 음악과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를 피부로 기억하며 어떤 향을 맡았는지 따위 등은 기억 순간을 겹겹이 쌓는다. 


어느 집이나 콩가루 같은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밥정으로 살지. - 영화 <고량화 가죽>



대학생 시절, 첫 남자 친구와 첫 데이트에서 나눴던 풋사랑의 어색한 파스타, 타지에서 홀로 일하는 딸에게 택배로 보내준 엄마의 갈비와 미역국, 각자의 밥벌이 고충을 두런두런 나누던 친구와의 시원한 맥주와 노가리. 그러니 먹는다는 건 나라는 인간의 물리적 형태뿐 아니라 정신적 행태를 조각하는 연속적 행위이다. 



한올, 한올 기억 속에서 벗겨낸 나의 시간들은 모두가 아름답다. 하나도 헛된 것이 없다. 어느 프랑스 타이어 회사가 평점에서 높은 평점을 얻은 유명 레스토랑에서 서너 시간에 걸쳐 음미하는 식탁이 물론 희귀한 경험이기에 더 많은 인상을 주겠지만 시장에서 떨이로 파는 야채를 투박하게 손질한 밥상마저도 나름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화려한 식탁이 강한 점이라면 사소하고 소소한 식탁은 보잘것없어 보여도 마치 작은 점들이 선처럼 이어져있기에 사실상 그것들에 더 많은 우리가 담겨있다. 어제의 일상은 오늘의 일상과 같아 보여도 미세하고 다르며 어제가 있기에 오늘이 있음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투박한 밥상에서도 나름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나의 여름은 하루하루가 특별하다. 목이 턱 하고 막힐 만큼 습도가 밀려들고 하늘 위에서 작열하는 태양이 정수리로 쏟아지는 계절, 시원한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소금기 가 녹진하게 남아 있을 때 베어 무는 여름과일과 야채들을 사랑한다.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후, 껍질을 벗겨낸 방울토마토를 올리브유, 레몬, 발사믹, 소금 등에 절인 토마토 절임은 상큼하게 입맛을 돋운다. 가지는 참기름에 조물조물 무치거나 파스타 주재료로 먹기도 하고 토마토와 함께 오븐에 구워 먹어 지겨울 틈이 없다. 갓 만든 고춧가루 양념에 석석 무친 오이소박이는 여름 식탁에 빼놓을 수 없다. 후식으로 먹는 여름 과채는 또 어떤가. 소금과 설탕을 적당히 넣은 물에 푹푹 삶은 옥수수는 식사 대용으로도 손색없다. 목구멍이 텁텁할 때 베어 무는 아삭한 풋사과나 시원한 수박의 과즙은 시원하게 몸속을 적신다 


이 계절에는 나로 하여금 살아갈 힘을 주는 세계의 위대함을 혀끝과 피부로 느낀다. 팍팍한 세상살이 속에서 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나를 지탱하는 힘을 알고 살아간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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