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룡이 May 27. 2020

죽순, 완두콩 그리고 머위

5월의 식재료


점포도 없이 시장 한편에서 장사하는 할머니는 몇 가지 채소를 세숫대야보다 작은 플라스틱 통에 넣어 팔고 계셨다. 할머니의 머위는 이파리만 끊어 파는 다른 가게의 것들과는 달리 잎과 뿌리를 연결하는 대를 자르지 않아 길쭉했다. 옆에 있던 죽순도 껍질만 벗겨낸, 막 대나무 숲에서 급하게 끊어내 온 모양으로 놓인 걸 보아 할머니는 식재료를 손질해서 판매량을 올리는 다른 가게들을 다른 차원의 것들처럼 보는 무심함이 있었다. 날 것 그대로의 시골이었다. 뼈마디가 쑤시는 노년의 장사꾼 입장에서는 손질하지 않은 물건을 파는 게 더 편리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좋았다. 그 관경이.



4, 5월에 반짝나는 머위


머구 한 단 주세요.


할머니에게서 머위와 죽순을 샀다. 준비해 간 면 주머니를 열고 머위 한단을 손으로 잡아넣었다. 밥을 주면 침을 흘리는 개처럼 기억에서 초록 잎사귀의 씁쓸한 맛이 스며 나와 혀 위에 침이 고였다. 언제부터 머위를 머구(머위의 경상도 사투리)라고 불렀는지 모르겠다. 또한 언제부터 그 씁쓸한 맛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역시 모르겠다. 어쩌면 평상에서 부채질하며 머위와 된장을 싸먹었던 어린 시절, 초여름의 기억 때문일런지도.

들깨가루에 무쳐 고소한 머윗대


머위는 대와 잎을 나누어 잎은 하얀 쌀밥에 된장을 넣어 짭쪼름하게 먹고 대는 들깨에 무쳐 고소한 떫은맛을 즐길 테다. 죽순은 떫은맛을 뜨겁고 차가운 물에 녹여낸 후 역시나 들깨 가루에 고소하게 무쳐 먹고 새콤달콤한 비빔국수에 넣고 아삭하게 즐긴 후, 구수한 된장찌개를 끓여 먹어야지 생각했다.

죽순은 냉수욕을 하며 떫은 맛을 빼내는 중



4월에서 6월에 만나는 제철 완두콩



간식으로 먹을 완두콩을 1kg 사고 샐러리를 한 단 샀다. 간식용 완두콩은 설탕과 소금을 넣어 끓인 물에 데쳐 씻어내고 탁-탁- 물을 털어내면 된다. 삶은 완두콩 한 줄기를 입에 넣고 치아 끝으로 껍질을 긁어 내듯 당기면 생선뼈를 발라내듯 깔끔하게 완두콩들이 쏟아진다. 초록색 구슬들이 혀 위에서 또르르 굴러가다 어금니와 어금니 사이에서 부셔진다. 오도독 오도독. 별다른 맛이 없어도 즐거운 그런 맛이다. 그러다 쌀에 앉혀 쪄 먹을 완두콩을 주먹만큼 쥐어 빼두는 걸 되새김한다.


샐러리 대는 렌치 드레싱을 얹어 먹어야지 생각했다. 이파리는 모아두었다가 남편이 좋아하는 토마토 소고기 스튜를 만들 때 사용하면 더없이 싱그럽다.



말그대로 아삭한 맛이 입안을 시원하게 만드는 간식들이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본 초당 옥수수 광고가 생각난다. 수박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 초록의 것들을 질릴 듯 먹어주고 경견하게 노란빛과 붉은 빛 등 원색의 것들을 맞이할 의사를 견고히 한다. 여기서 우리는 먹을 것을 사면서 다른 먹을 거리를 떠올리는 과하다고 느끼거나 이상하게 여기면 안된다. 당연한 반사작용이다.


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닌, 그 사이에 있는 5월부터 재밌는 식재료들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다가온다. 바닷물처럼 밀려오는 계절의 결실을 뜨거운 물에 삶고 찌고 기름에 볶거나 짭쪼름한 맛이 베여나오게 저리거나, 고소하게 버무려야 비로소 음식이 되고 살이 되고 기억이 된다. 흙뭍은 식재료를 털어내어 탱글하고 단단한 속살을 봐야 하는 이유다. 수 억광년을 지구 주변을 멤돌다 잠시 반짝이는 혜성처럼 잠시 반짝이는 재철 식재료들을 감사하게 음미해야 하는 이유다.


 그 순응대로 변하는 부억의 색은 오늘, 연두빛깔에서 진한 초록으로 깊어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듣기와 말하기는 전혀 다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