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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룡이 Oct 11. 2021

기승전결은 개나 주라 그래

나는 대학생 시절에는 영화를 공부했고 

직장 생활은 마케터로 직업을 삼았으며 

자궁 근종에 관한 책을 한 권 썼다.

그랬더니 내 머릿속에 한 가지가 휴대폰 기본 설정처럼 습관화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적극적인 감정 몰입을 위해 무슨 일이든, 무슨 말이든, 무슨 글이든

도입부는 잔잔해야 하며 점점 감정 몰입도가 높아져 절정에 이르는 순간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인간은 가슴으로 이야기를 이해하고 머리가 자발적으로 해석하려는 습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여전히도)


기승전결 


기승전결.


가만 보면 나는 집착적으로 매달렸다. 클라이맥스로 향하기 위해 차곡차곡 쌓이는 감정의 경로들을.

그것들이 없으면 가치 없는 창조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말도 안 되게 짧은 순간 (병의 원인이 되는)사건을 겪고,

2달이 넘게 조울증과 공황, 불안장애를 겪다 보니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이 

사람이 사는 데에는 모든 게 '기승전결'로 연결되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날씨가 갑자기 변하듯 사람 사는 것도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를 겪었다

그러니 사람 인생, 기승전결로만 살아가지 않는구나 생각한다.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다.'는 어르신들의 나지막한 말들은 세월이 빚어낸 그들의 생존법이었다. 

이제는 나도 글을 쓸 때도, 말을 할 때도 그냥 내뱉으려 한다. 그날의 우울을, 그날의 기쁨을 , 그날의 불안을.

'누군가에게' 효과적인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기승전결에 억지로 끼워 맞추고 

'누군가를' 이해시키려 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목차도 없고 두서도 없는 글을 쓴다. 


'나의 우울'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불안'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러니 기승전결은 개나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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