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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룡이 Dec 25. 2021

다 보여주기는 싫어서

행복을 글로 전시합니다.

현대인의 고질병이다. 손바닥 위에 놓여진 네모난 세상에 빨려 사는 것은. 심지어 환갑을 바라보는 우리 이모마저 SNS 하는 시대이니 나라고 안 할까.

나는 주로 한 개의 SNS를 사용하지만 두 개의 계정, 아니 그 이상의 계정을 사용한다. 


그러니 시간과 시간 사이에 골이라도 흐를라치면 으레 버릇처럼, 아니 숨 쉬듯 당연하게 네모난 창에 비치는 네모난 그림을 누른다. 그러면 네모난 그림들이 수없이 눈 위로 쏟아진다. 



네모난 그림은 네모난 사진들을 불러오고 사람들의 생과 연결되어 보인다. 음식 사진, 자신의 얼굴을 담은 사진, 풍경 사진... 익숙한 얼굴의 사람들은 물론 어느 나라 언어를 쓰는지 알 수 없는 이들이 올린 이 많은 사진들.


어떤 목적일까. 어떤 마음으로 이들은 이 지극히 사적이거나 사적이지 않은 것들을 올리는 걸까. 나는 매달 10만 원을 주고 다른 이들을 엿본다. 


무용하고 아름다우며 찰나 같은 순간들을.



무용하고 아름다우며 찰나 같은 순간들을.


최근의 행복 1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보여지는 것만큼 아름답지 않다는 걸 알지만 적어도 그 네모난 사진으로 엿보는 타인의 삶은 그들의 오롯한 행복일 테니. 









여러 번 언급하듯 나는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고 시시때때로 눈물이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흘러내린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그러겠거니.', '힘들겠거니.'하고 무심하게 넘겨짚을 수 있지만 우울이 곰팡이처럼 스며들어버린 일상은 생각보다 마음 시리다. 







 먼저리에서 얇디얇게 행복이란 게 스쳐가면,




최근의 행복 2

그러니 먼저리에서 얇디얇게 행복이란 게 스쳐가면, 그 기적 같은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이런 마음이 물결처럼 흐르다 보면 나도 SNS에서 만나는 그들처럼 내가 마주한 행복을 전시하고 싶어 진다. 

'보세요! 제가 이렇게 행복하답니다! 까르르르-'하고 웃고 싶을 때가. 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주로 그 마음을 한 겹, 두 겹 접어 가슴속 서랍에 집어넣는 편이다. 우울이 썰물처럼 밀물처럼 차고 내리기에 손님처럼 찾아오는 행복을 나만 보고 싶을 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홀로 바라보는 행복





홀로 바라보는 행복. 





마치 어릴 적, 숨바꼭질을 할 때 홀로 구석에 숨거나, 장롱 속에 들어가 친구들이, 가족들이 나를 발견할 때까지 '키득키득'하며 기대했던 기억처럼 말이다. '나를 언제 발견할까?' 생각하며 가슴이 터져버릴 듯 기대했던 순수했던 마음처럼 말이다. 


그러다 숨어있는 나를 발견한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눈이라도 마추지면 들켰다는 아쉬움과 함께 '드디어 발견했구나!' 하는 안도감과 우월감이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그 솔직했던 순간은 나만 안다.



그런 기억의 맥락에서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온전한 나의 마음을 쉬이 다 보여주기는 싫어서 글로 쓴다. 여기까지 글을 읽었다는 건 나라는 존재에 일할의 시간을 내어주는 애정이니,

그걸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 


그때, 그 시절, 그 순수함으로 .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나의 행복을 전시해본다. 



최근의 행복 3 








오늘은 조금 덜 우울하다. 그리고 조금 더 기쁘다.

해피 메리 크리스마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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