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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Sep 20. 2024

#20201215

‘김팀 통화 괜찮을 때 통화 한번 하자고’


점심을 먹고 있는 데 박이사 아니 이제는 박대표에게 메시지가 왔다. 밥을 먹고 산책을 하면서 통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제법 날씨가 차가워져서 산책은 할 수 있지만 손을 내놓고 오래 다니기엔 무리가 있는 날씨였다.

 

박대표에게 들은 말은 조금은 충격적이긴 했다. 지난 10월에 나와 스타트업 이직과 관련해서 면담을 했던 팀원 P가 박대표에게 이력서와 메일을 보냈다는 이야기. 메일 내용은 뭐 안 들어도 알 만 했다. 스타트업에서 일을 해 보고 싶은데 그래도 가능하면 아는 곳에서 시작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 


“난 일단 아무런 답도 안 한 상태이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아마 김팀한테 조만간 면담을 신청하지 않겠어? 이미 마음은 굳혔으니 나한테 이력서를 보냈을 테니.”

“음… 그렇겠네요. 알겠습니다. 일단은 메일 잘 받았다는 정도의 회신만 해 주십시오”

“근데 김팀은 어떻게 생각해? 그 친구가 합류하는 거에 대해서? 어차피 우리도 채용은 해야 할 테고 이왕이면 같이 일을 해 봤던 팀원이 김팀도 같이 일하기 편하지 않겠어?”

“일단 면담하고 생각 좀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전 알다시피 팀원들은 누구든 잘 지냅니다. 항상 윗분들과 트러블이 있을 뿐 ㅎㅎ”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자리로 가던 중 P와 눈이 마주쳤고 간단한 눈인사를 하고 난 내 자리로 향했다. 내가 자리로 가는 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자리에 앉자마자 메신저에 빨간색 알림 표시가 들어왔다. 

‘팀장님 오후에 면담 가능하실까요?’

‘오늘 오후엔 처리할 일이 좀 많아서 시간 내기가 좀 어려운데요’

‘넵 알겠습니다’ 

‘혹시 오늘 퇴근하고 별일 없으면 맥주나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할까요?’

‘네? 팀장님이 퇴근하고 저랑 맥주를 마신다고요???’

‘뭐 다른 약속이 있으면 내일 이야기해도 괜찮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럼 오늘 퇴근하고 맥주 한잔 괜찮습니다’ 

‘그래요 그럼 이따 1층 로비에서 봅시다’ 


퇴근하고 맥주 한 잔 하자고 하는데 팀원이 화들짝 놀란다는 것은 팀장으로서의 역할을 그다지 잘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한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금 어지러운 메신저 창을 닫고 숫자로 가득 찬 더 어지러운 파일을 랩탑 화면에 띄웠다. 


“의외였습니다. 팀장님이 퇴근 후에 맥주를 한잔 하자고 하셔서”

로비에서 나를 보자마자 P가 나에게 쏟아낸 말이었다. 

“왜요? 불편한가요?”

“아니요 당연히 전 불편하지 않습니다. 다만 좀 놀라긴 했습니다. 팀원들 사이에서 소문이 파다하거든요”

“어떤?”

“아~ 팀장님은 팀원들의 퇴근 이후에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거든요. 약간 정이 없다고 느껴질 만큼”


정이 없다고 느껴질 만큼? ㅎㅎ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 퇴근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퇴근 이후에 회식도 거의 하지 않고 참석하지도 않으니. 그러고 보니 팀원과 퇴근 후에 저녁 혹은 맥주 한잔 같은 시간을 가진 것도 거의 2년 만인 거 같다. 2년 전에도 같은 이유였던 거 같은데.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팀장님 주문할까요?”

“그래요 먹고 싶은 것으로 주문해요”

주문을 하고 무슨 이야기인지 물어볼까 하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면담을 요청한 쪽에서 준비가 되면 어련히 이야기를 할 것 이기에. 

“팀장님 사실은 저 박이사님한테 그쪽에 합류하고 싶다고 이력서와 메일을 보냈습니다” 

놀라는 척 연기라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아무 말 없이 맥주를 한 잔 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음… 그랬군요”

“놀라지 않으시네요. 예상하신 건가요?”

“일전에 한번 나한테 이야기를 했었으니.. 근데 박이사 이메일 주소는 어떻게 알았나요?”

“아~ 그건 퇴사하시기 전에 개인 이메일을 받아 둔 게 있습니다. 혹시 몰라서”

“ㅎㅎ 준비성 좋네요. 그래서 답은 받았나요?”

“일요일에 보내서 아직은 받지는 못했습니다. 팀장님이 생각하시기에 이사님 스타트업 아이템은 어떤 거 같은세요?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 면담을 신청한 거라서”


나 역시 어느 정도까지 아는 척을 해야 할지 순간 판단을 해야만 했다. P는 내가 그곳에 합류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난 그곳의 아이템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니. 일단은 대단히 두리뭉실하게만 알고 있는 척하기로 맘을 먹고, 


“나도 대충 들어서 잘은 모르지만 박이사가 이야기해 준 것으로만 판단하면 괜찮아 보이긴 했어요. 뭐 근데 본인이 좋은 것만 이야기해 줬을 테니 정말 믿기는 애매하긴 하죠”

나와 지난번 면담 후 스타트업에서 일해 보기로 결심을 했다고 하면서 그래도 이왕이면 아는 사람이 창업 한 곳에서 시작을 해보고 싶다고 말을 했다. 


“그럼 언제 퇴사를 생각하고 있나요?”

“아마도 2월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흔한 직장인이다 보니 성과급은 받고 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을 했고 주변 친구들도 다 그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요 그건 무조건 그렇게 해야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갑자기 나와 이 친구가 동시에 퇴사를 한다면 우리 팀은 어쩌나?라는 순간의 오지랖이 머릿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내가 전혀 걱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팀장이라는 나의 부캐가 가지고 있는 양심이라는 놈이 얼굴을 쓰윽 내미는 것 같았다. 

“혹시 개인적인 질문 해서 미안한데 여자친구 있나요?”

“네 있습니다. 왜 그러시죠?”

“아 여자친구는 뭐라고 하나요? 스타트업으로 옮기려는 것에 대해서?”

“제 여자친구는 사업을 하고 있어서 더 지지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훗날 창업을 하고 싶은 것도 여자친구한테 영향을 받은 부분이 크거든요”

“무슨 일 하는지 물어봐도?”

“그럼요~ 쇼핑몰 하고 있어요”


그날의 저녁 면담(?) 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박이사에게 답장이 오면 알려 달라고 하면서. 어차피 퇴사를 염두에 두고 알아보고 있는 중이니 퇴사를 말릴 수는 없는 상황이고, 나 역시 퇴사를 앞두고 있으면서 말리는 것도 웃기는 꼴이었다. 

평상시에 저녁도 먹지 않는데 맥주와 안주를 조금 먹었더니 조금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기온이 차갑긴 했지만 그렇게 많이 춥거나 하진 않았으니. 


그러면서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나의 여자친구도 사업을 하는데. 그녀는 나를 지지해 주지 않고 염려하고 있는데 이 친구의 여자친구는 염려가 아닌 지지를 해 주네. 하면 안 되는 ‘비교’라는 못된 생각이 스멀스멀 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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