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열네번째 억지

by 그런남자

꼰대, 과거에는 아버지 혹은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칭하던 은어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의미가 조금 변하였다. 최근에는 자신의 생각이나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통칭하는 말로 더 많이 사용된다. 따라서 과거에는 조금은 나이가 있는 주로 '아저씨들'이었지만 최근에는 소위 말하는 '젊은 꼰대' 들이 등장하면서 저 단어의 연령층의 벽을 부수어버렸다. '라테 이즈 호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버린 꼰대 문화와 그 문화를 과거와 달리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불만을 표시하는 세대들이 생겨나면서부터 '꼰대'라는 칭해지는 사람들이 점점 기피 시 되었고,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하는 그런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면서 심하진 않지만 혐오의 대상으로 되어 가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들고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젊은 세대들은 항상 기성세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온전한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현재 꼰대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과거엔 그 윗세대들에게 같은 잔소리 혹은 평가를 받으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요즘 중학생들이 말을 너무 줄여서 하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지만 우리들 역시- 난 현재 40대이다- 김떡순이니 등등 말을 줄여서 사용하면서 자라 왔다. 과거의 기성세대들이 현재의 기성세대들보다 보수적이면 더욱 보수적일 것이고 막혀 있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면 이건 그들의 잘못(?) 이라기보다는 현재 2,30대 즉, 소위 밀레니얼이라고 불리는 세대들의 변화에서 기인했다고 보는 것이 더욱 맞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들은 그들이 살아오면서 느끼고 경험해 왔던 것들을 지금 세대들에게 알려 주려고 할 뿐인데 그 방법이나 방식 자체가 적절하지 않아서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럼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1. 그렇게 배워 왔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항상 대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특히, 취직을 앞둔 사람들에겐 더욱 강조해서 말한다. 첫 번째 회사가 중요하다는 말. 그 회사의 규모, 네임벨류, 연봉 등 중요한 요소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일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첫 번째 회사에서 그의 사수에게 배운, 그리고 그 회사의 일하는 방식으로 대단히 오랜 기간 동안 일을 하게 되고 본인의 팀원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 주게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어떻게 배우는지가 상당히 중요하다. 지금 현재 꼰대라고 불리는 사람들 역시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항상 모호한 지시를 받아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고 본인의 답에 대해 항상 의구심을 가지면서 일을 했을 것이다. 그건 지시한 사람이 모호하게 지시를 했기 때문에 생기는 의구심임에도 말이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능력을 자책하면서 일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곤 어떻게든 그 일을 처리해내기 위해 밤을 새워 가면서 안간힘을 쓴다. 명료한 지시였으면 시간과 체력을 줄이고 일의 능률을 대단히 올렸을 것을 말이다. 그래서 본인도 배운 대로 본인들의 팀원들에게 지시를 하고 그 일을 잘하지 못하는 팀원들에게 '라테 이즈 호스'를 시전 하게 된다. 본인도 그 당시엔 불만을 가졌음에도 말이다. 그런 시절을 까마득히 잊었는지 아니면 잊고 싶었던지.


#2. 실제로 그땐 그랬다.

그들이 항상 강조하는 '나 때' 즉, 그 당시엔 실제로 그랬다. 윗사람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했고, 개인의 삶보다는 단체 혹은 조직의 삶이 더 우선시 되었으며 본인의 삶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시대였다. 실례로 당시의 채용 면접에서 종종 '회식과 본인 개인 약속이 겹치는 경우 어떻게 할 건가요?'라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서슴없이 했던 시절이었고 답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들이 그랬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고 하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건 그냥 익숙한 길을 고집해서 가는, 혹은 익숙한 방법으로만 무언가를 하는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인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그런 것이 자의건 타의건 몸에 배어서 익숙해진 상태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요구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거나 어색하지 않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길 대로 가는 것이 편한 것과 같은 것이다. 정작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 누군가가 본인에게 익숙한 것, 하지만 우리에겐 낯선 것을 강요한다고 그걸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익숙한 것이 다른 사람에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정 못하는 것, 그 역시 꼰대들을 이해 못하는 우리네들의 똑같은 모습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3. 말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예전에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배철수 dj 가 가수 조영남 씨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여러 세대의 사람들과 친숙하게 지낼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난 그 대답이 너무도 와 닿아서 시간이 꽤 많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대화를 기억하고 있다. '질문한 것에만 대답한다' 조영남 씨가 했던 답은 이것이다. 먼저 말하려 하지 않고 그저 누군가 질문을 한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만 하고 더 이상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는 것.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고, 직급이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실천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느낄 것이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불필요한 말들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엄청난 수준으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이상 그럴 수밖에 없다. 나 역시 항상 조심하려고 하지만 말해 두고 돌아서서 하지 말았어야 했던 말임을 스스로 인지 한 적이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있어서 굳이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꽤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어떤 말들을 했고 이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되었는지에 대한 감각이 거의 없다. 즉, 본인이 한 말, 혹은 행동이 누군가 지적해주기 전까지는 잘못되었다고 인지하지 못한다. 실제로 그렇다. 경험상 여자보단 남자에게 더더욱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나도 최근 몇 년 동안 '꼰대가 되지 않는 것'을 삶의 목표처럼 잡고 살았었다. 내가 첫 회사 생활을 했을 당시의 그 사람들의 기억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어느 때인가부터 내가 그 정도 위치에 가면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약간 바뀌었다. 어차피 꼰대가 될 운명이라면 가능하면 좀 괜찮은 꼰대가 되기로 말이다. 후배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물어 온다면 쓸데없는 나의 의견보다는 그 궁금한 사항에 대해 정확한 피드백을 주는 것, 그리고 더 원한다면 나의 의견을 덧붙여 주는 정도로 답을 주는 것이다. 말로 쓰니까 쉽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직접 경험해 봐서 알고 있다. 무언가 더 이야기해 주고 싶고 그런 마음은 고이 접어 두는 것이 좋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고 스스로 생각이 들지라도 듣는 사람이 그 말을 들을지 여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돌아보자. 우리 역시 부모 말도 안 듣고 살고 있는데 다른 사람 말을 얼마나 잘 들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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