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번째 억지
내가 스타트업계에 들어온지도 햇수로 7년이 넘었다. 그간 상당히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났었고, 그들과 일을 했었다. 초기 스타트업은 대표의 역량은 회사의 존폐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대부분의 결정을 대표 혹은 창업자들이 해야 하는 구조이기에 어쩔 수 없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그와 비슷한 수준의 스타트업들이 사라져 가고 있고 지금 이 시간에도 스타트업 설립을 위해서 힘을 쓰고 있는 창업자 혹은 창업자들이 밤낮을 새워가며 고민하고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스타트업'이라고 하는 기업의 형태가 생겨난 지 10여 년이 지나면서 '유니콘'이라고 불리 울 수 있는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면서 꽤 많은 사람들이 스타트업이라고 하는 기업 형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런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그리고 창업한 대표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성공한 스타트업들의 대표들은 미디어에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들을 연구하고 평가하는 자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렇지 못한 대표들을 연구하고 관찰하는 자료들도 나오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연구함으로써 창업자들이 버려야 할 자질들을 연구하는 것이다. 흔히들 '대표병', '루피병'에 걸렸다고 평가받는 대표들이 있다. 내가 오늘 억지로 생각해 보고자 하는 스타트업 대표들은 바로 그 사람들의 입장이다. 그들을 대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대표는 어쩔 수 없이 그 무게감을 버텨내야 하는 자리이다. 또한 창업자들은 본인이 선택해서 창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더더욱 그들을 대변할 필요도 없다. 그냥 그들도 성공을 꿈꿨으나 그렇게 되지 못한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는 정도로 보면 좋을 것이다.
#1. 대표가 처음이다.
지금 현재 창업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대표'라는 자리가 처음이다. 연쇄 창업자의 경우는 다르지만 그런 사람은 극히 소수이고 대부분은 처음 창업을 했고 '대표'라는 역할을 처음 하게 된다. 심지어 어떤 창업자들은 회사 내 작은 팀을 운영하는 팀장 역할도 해 보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작은 조직- 심지어 1인 창업-이라고 해도 해야 할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버겁게 느껴질 것이다. 법적인 부분들에서부터 시작해서 세무적인 부분들 그리고 서비스 혹은 프로덕트를 개발해야 하는 일까지 몸은 하나인데 해야 할 일은 정말이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게다가 팀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 그 일은 두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제곱으로 늘어나게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감이 안 오고 일이 뒤죽박죽 되기 시작을 한다. 그렇다고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그 사람이 대표로 적응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 주는 경우는 없다. 신입사원이라면 연수과정이나 OJT과정, 그리고 대기업에서는 사수들이 직접 필요한 부분을 알려주고 지도해 주지만 스타트업에선, 심지어 대표에겐 그런 호의는 기대할 수 없다.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직접 부딪혀 가면서 비즈니스와 조직을 키워 나가야 한다. 이런 험난한 과정을 격다 보면 본인이 생각한 기업의 비전이나 미션보다는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에 매몰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본인의 큰 뜻(?)을 펼쳐보기도 전에 사라지게 되고 마는 것이다.
#2. 대표는 맘대로 해도 될 거라 생각했다.
대표가 결정하고 지시하면 모든 팀원들이 다 따르고 그 결정 사항을 지지해 줄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대표라고 하는 자리가 그런 자리라고 처음부터 인지하고 창업을 하는 경우도 꽤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대로 하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뤄내겠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대부분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직접 경험으로만 놓고 봐도 꽤 많은 창업자들이 그리고 대표들이 그런 망상에 사로 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생각한 아이디어 혹은 아이템에 동의해서 팀에 합류를 했으면 본인이 생각하고 기획한 바를 지지하고 따라줘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말로만 보면 전혀 모순이 없다. 분명 채용 과정을 통해서 창업자의 생각과 비전에 동의해서 합류를 결정한 팀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비즈니스를 진행해 나감에 있어서 모든 결정사항에 동의하고 따르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어떤 모임을 기반으로 수익을 발생시키는 스타트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스타트업을 창업한 대표는 이런 다양한 모임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교류를 하고 그런 모임의 장을 제공해 주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해서 창업을 하게 되었다. 그런 플랫폼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인정하고 합류한 팀원이라고 하더라도 현재 코로나 시국에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을 진행하자고 주장하는 대표의 의견을 따를 수는 없다. 누가 그런 바보 같은 주장을 하겠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대표들이 꽤 있다. 직접 경험한 것이니 믿어도 무방하다.
#3. 실력 혹은 운이 없다.
내가 종종 하는 표현이 있다.
'디지털은 0과 1로 구성이 되어 있다. 스타트업은 디지털과는 때려야 땔 수 없는 관계이기에 스타트업을 0과 1로 설명하면 0은 망하는 것이고 1은 안 망하는 것이다. 1이 성공일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창업을 하는 대표들은 본인이 창업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경력이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금융과 관련된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사람은 금융 경력이 있고 기술분야의 스타트업인 경우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개발자 출신이다. 그래서 본인이 가장 잘 아는 분야라고 생각하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정확하게 말해서 실력이 좋은 것이 아니다. 본인이 실력이 좋지 않은데 성공을 꿈꾸는 거 자체가 어폐가 있는 말이다.
또한, 모든 스타트업들은 열심히 한다. 아니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한다. 난 솔직히 내가 하는 일을 열심히 하진 않는다. 하지만 소홀하게 하지도 않는다. 암튼. 모두가 열심히 하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성공을 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를 한다. 그 갈림길을 결정하는 것은 누가 더 열심히 했냐 라기보다는 안타깝게도 운이 크게 작용을 한다. 본인은 실력도 있고 있고 아이디어 혹은 아이템도 좋았지만 성공을 하지 못한 건 그냥 그때가 별로 좋지 않았던 것뿐이다. 다른 걸 탓할 필요는 없다. 이 경우가 위의 두 경우에 비해 굉장히 안타까운 경우이다. 현재 여행과 관련된 스타트업들이 대단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 이 경우라고 하겠다. 만약 이 시국이 시작될 시점에서 여행과 관련된 스타트업을 창업했다고 하다면 그건 능력, 실력, 탁월한 아이디어와는 별개로 그 스타트업은 사라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냥 그 대표가 운이 없었던 것뿐이다.
스타트업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스타트업 대표의 리더십과 창업가 정신에 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연구들을 하고 있다. 난 스타트업계에 있지만 창업을 할 생각도 대표가 될 생각도 없다. 그런 깜냥이 안된다는 것을 자기 객관화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하지도 못할 주제에 이런 글을 쓴다는 것도 모순일 순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은 계속 생겨날 것이고 그 말인즉슨 창업자들은 계속 생겨 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그럼 스타트업 대표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다고 말해 주고 싶다.
실력, 책임지는 자세, 그리고 무언가를 놓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