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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타 Nov 26. 2016

가을이 내게 물었다

너는 영영 스물일 줄로만 알았지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 해.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자우림, 스물다섯 스물하나 中


그러니까 어느 때는, 내가 영영 스물일 거라고 믿었다. 예를 들면 내가 스무 살일 때. 처음 벚꽃 아래 한참을 서 있을 수 있던 때. 여기저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가며 이게 내 스무 살이야, 하고 자랑하던 때. 그건 마치, 꽃이 영영 지지 않을 거라고 믿던 어느 사막의 카라반과도 같았다.


나는 스무 살에 너를 만나, 스물한 살에 너를 사랑했다. 너를 만난 첫 봄은 조금 추워서 너를 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서늘하고 너는 따스해서, 내가 너를 안고 네가 나를 안아야 36.5가 될 것만 같았다.

너와 걸으면 사방에 꽃이 피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가지를 늘어뜨릴 때면 손으로도 잡을 수 있었다. 너의 봄도 그랬고, 나의 봄도 그랬다. 우리는 차마 꽃가지를 꺾을 수 없어 바닥에 떨어진 것 중 그나마 깨끗하고 멀쩡한 것을 골라 귀에 꽂았다. 예쁘네-우리는 한참을 웃어대다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


그러니까, 이상한 일은 그것이었다. 열아홉에서 스물이 된다고 해서, 스물이 스물하나가 된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거나 뒤집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집 방바닥에 앉아, 익숙한 전화번호로 치킨을 시키고 어머니 아버지와 콜라 한 잔을 마시며 TV로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나이듦이었다. 한 살을 더 먹는다고 아무 것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원래 삶은 그런 것이다. 흑에서 회로, 또 백으로 갈 때 아무 차이도 못 느끼지만 멀리서 보면 그것은 변한 것이다. 내 인생의 스펙트럼.

때로는 스물이라는 단어가 생경하게 느껴졌다. ㅅ 아래에 ㅡ 모음이 있는 것도 이상했고, ㅁ 아래에 ㅜ 모음이 또 그 아래에 ㄹ 받침이 있는 것도 다 이상했다. 함께 발음하면 더 이상했다. 스물이라니, 이런 단어는 어떻게 만든 걸까. 스물스물, 뱀도 아니고.


허나 내 생은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스물은 옳은 단어였다. 그보다 더 옳을 수는 없었다. 나는 뱀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 곧 녹아버릴 위장으로 전진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 때 세상이 뒤집혔다.

그것은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내 세상을 찢은 것은 나의 스물하나됨이 아니었지, 다만 너의 스물다섯됨이었던 것이다.


Der Vogel kä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ss eine Welt zerstören. Der Vogel fliegt zu Gott. Der Gott heisst Abraxas.


헤세가 그랬다. 새가 세계로, 신에게로 날아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세계를 깨야만 한다고. 그러니까 어쩌면, 네가 나의 신인 것이다. 너는 나의 세계를 찢고 나를 안은 것이다. 나는 세계를 얻기 위해 기꺼이 하나의 세계를 버렸다. 그러니 나의 스물하나가 어찌 스물하나라는 이름만을 가질 수 있을까. 감히 너를 제외하고서. 이 세계는 스물하나. 반점을 하나 찍고서, 스물다섯.


영원하리라 믿었던 우리의 스물하나와 스물다섯이 가을을, 이제는 겨울을 맞았다. 너와 걷던 거리에 거친 빗자루로 정리된 낙엽과 앙상한 가지만이 남으면 미련이 남은 가을이 서성이다가 나에게 묻는다.


너는 영영 스물일 줄로만 알았지?


그럴 줄로만 알았다. 스무 살의 봄에, 여름에, 가을에, 겨울까지도. 허나 스물하나가 되고, 또 스물다섯의 너를 만나 나는 영영 스물하나일 것만 같다. 내 시계는 너를 처음 만난 3월의 꼬리에 멈춰 있어 더 나아가지 않는데, 너의 시계는 얼마나 낡아가고 있니.


너는 언제까지 더 영영 스물을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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