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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타 Apr 18. 2017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아마 그날은 내 기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날은 비가 가늘게 떨어지다 그친 다음날 아침이었다. 떨어진 꽃잎과 눈이 마주쳤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마 그쯤 배웠던 낙화라는 시가 스쳤다. 내 또래 누구나 아는 그 문장. 그 첫 연. 그 시구.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이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남들은 첫 연과 하롱하롱만 기억한다던데 나는 어찌 또 문장을 사랑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중학교 때 처음 시와 사랑에 빠졌고, 다만.

나는 시에서 결별을 배웠다 나중에 저자가 결별과 몌별 중 고민했다는 글을 읽고 나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단어는 한 동안 몌별이었다. 몌라는 한자를 처음 알고 그 음의 아름다움에 한 번, 몌별이라는 단어를 발음하고는 또 한 번, 뜻에 또 한 번, 몇 번씩 반한 단어를 나는 교과서 귀퉁이에 몇 번씩 써넣었다. 몌별, 몌별, 몌별-.

그리고 나는 그 시를 다시 만나 떨어진 꽃잎 앞에 앉았다. 분홍색과 흰색의 사이에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매화와 벚꽃은 다르다지, 미안하지만 나는 네가 매화인지 벚꽃인지조차 모르겠구나 그저 어여쁜 것으로 기억해서 미안해.


나는 누군가의 인생에서 이름도 성격도 취미도 지워지고 그저 어여뻤던 아이로 남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이 서러워서 꽃잎에게 또 미안해서 그날은 목을 매고 죽었다. 어쩌면 나는 이름만은 제대로 기억될 테지만 꽃잎들은 그것조차 아닌걸. 삶에 미련이 없는 듯 만남과 헤어짐에 의미가 없는 듯 바닥에 누운 꽃잎들은 그대로 눈과 귀를 막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부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헤어지자 그 한 마디에 떨어지기 싫어 울먹이던 벚꽃이든 매화든, 꽃잎 한 조각을 오늘 기억해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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